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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Jan 31. 2023

인생 리셋의 판타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회귀물의 카타르시스가 무색해져 버린 드라마의 결말 

weekly delights; 하루종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인프제(INFJ)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때로는 흥미로운, 때로는 쓸데없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이제 매주 하나씩 짧은 글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잠깐씩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에게 보다 느린 관심을 주고, 한번 더 곱씹어보고, 조금의 정성을 더해 붙들어 놓는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잘 읽고 이해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2022년 11월 18일부터 12월 25일까지 약 한 달여간의 기간 동안 짧고 굵게 방영되었던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끝났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 등 3곳의 OTT 서비스를 통해 동시 방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는데요, 같은 JTBC 드라마였던 부부의 세계에 이어 역대 드라마 시청률 2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출처: JTBC)

개인적으로는 회귀물, 환생물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피로함 때문에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던 드라마였어요. 시간여행이나 전생과 환생 등은 워낙 소설, 만화, 드라마 등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 데다가, 최근에는 제목만 봐도 해당 주제인 것 같은 콘텐츠들이 유독 너무 많아 보였거든요. 그러다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극이 거의 후반부에 치달을 때 뒤늦게 정주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소문대로 모든 주/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스토리의 시원시원한 전개 덕에 오래간만에 푹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던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저는 IMF, 타이타닉,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 분당 신도시, 아마존닷컴, 2002 월드컵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을 스쳐 지나가며 다루는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봤어요. 어렸을 적에 경험했던 사건들이 반갑기도 하고,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 윤현우가 이런 사건들을 발판 삼아 성공을 이루는 모습에서는 일종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회귀물, 특히 미래에서 온 주인공이 갖고 있는 지식과 능력을 발휘하는 먼치킨물의 매력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스틸컷 (출처: JTBC)

그런데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흥미로웠습니다. 드라마는 아주 큰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웹소설인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막을 내리며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받았는데요, 인터넷상에서 관련 콘텐츠의 댓글창을 살짝만 봐도 분노의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와는 다른 결말로 직접 각색한 네티즌판 결말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그중에서는 오히려 기존 결말보다 더 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 조금 늦게 정주행을 시작한 저 또한 "마지막화 내용: 모두 꿈이었다"라는 스포를 미리 당하고 나니 더 이상 드라마를 마저 볼 의욕이 나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 시청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과 허무함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도 의리상 끝까지 봐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먹고 보다 보니... 단순히 '모든 게 꿈이었다'는 건 아니더라구요? 분노할만하다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엉성한 개연성과 설정 오류는 차치하고, 꿈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욕먹을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가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스틸컷 (출처: JTBC)

꿈이고 꿈이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라, 윤현우가 진도준의 삶에서 다시 본인의 삶으로 돌아온 그 자체가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요. 아무리 윤현우로 돌아와서 순양가 인물들의 범죄 사실을 폭로하고, 법적 처벌을 받게 한들 어딘지 모르게 찝찝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감옥에 들어간들 언제 다시 사회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며, 상대가 가진 막대한 권력과 자본력이 아예 없어지진 않을 거란 말이죠. 평범한 인생을 살던 일반인 윤현우가 거기에 대적할 힘을 키워나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엔 미래에 대한 사전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은 상태로 말이에요.


엎치락뒤치락하며 겨우 차지하게 된 순양의 회장 취임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윤현우의 삶으로 돌아오게 된 현실. 회귀물이 독자/시청자에게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그야말로 와장창 깨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원작에서는 드라마와 달리 진도준이 죽지 않고 복수에 성공하며, 결국 순양그룹의 회장 자리에도 오르는 결말을 보여줍니다. 아주 충실하게 회귀물 - 즉, '인생 2회차'의 판타지를 그대로 따르고 있지요. '이생망'으로 2회차 인생을 꿈꾸는 시대, 인생 리셋의 판타지를 주기 위해 시작했으면 그걸 끝까지 지켜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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