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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끔 Feb 23. 2024

아줌마 잘 컸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깨에 폰을 비스듬히 걸친 채 전화를 받고, 긴 머리칼을 휘날려가며 정신없이 업무를 보고 있을 나를 상상하니 그저 벅찼다. 현실은 퇴근과 퇴사 각만 재는 월급루팡이자 눈칫밥에 배부른 일개미일 뿐. 인생에 별다른 이벤트가 없다 보니 날짜 개념도 사라졌다. 시끄러운 새해나 연말에서야 나이가 드는 걸 체감한다. 줄곧 동안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꽃청춘이라 우겨 볼까 싶은데 숫자 앞자리가 바뀌니 근거도 슬슬 비약해진다.


유행만큼은 뒤처지지 않으려 실시간으로 SNS 동태를 살폈다. 그럭저럭 스펀지 같은 흡수력을 자랑했건만 최근에 ‘아줌마 잘 먹지?’라는 밈에는 바로 웃어넘기지 못했다. 너른 아량으로 여느 유머처럼 소비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와중에 ‘아뿔싸’ 따위나 떠오른 걸 보면 미혼을 떠나서 아줌마의 경계에 걸친 게 자명했다. 젊음과 동떨어진 어감 때문에 껄끄러운 느낌은 부정할 수 없지만서도 앞으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테니 더는 양심이 지체되면 곤란하다. 공교롭게도 이상하리만치 입에 붙어서 금세 마음이 내켰더랬다.


사실 나날이 밥벌이하느라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뿐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는 나름 괜찮은 아줌마. 기어코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 연고지 없는 동네에 정이 들었고, 매달 갱신하는 카드값에 벌벌 떨다가도 완납하는 쾌감에 사로잡힌다. 나만 그런가. 뉴스는 일면의 가십거리가 아닌 정치나 사회면을 보며 알은체하기 바쁘다. 또 오래 살 생각 없다 말해도 누구보다 약봉투에 진심일 때면 헛웃음이 난다. 요즘은 건강한 잉여에 꽂혀 운동도 깨작거리고 사흘 단식도 개의치 않는다. 그놈의 보상심리가 자주 출몰해 문제지만. 그러다 낙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풋내기 시절의 기대와는 조금 많이 다르게 커버렸지만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잘 지내니 꽤 묘하다. 가끔은 엄마가 밥하고 아빠가 빨래해 주는 보살핌과 꾸지람 속의 화초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온전히 나의 의지로만 움직이는 삶에 일말의 책임감이 들어 다잡는다. 또 거창한 파이팅까지는 아니고 어찌어찌 일인분의 몫을 하리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있고. 해서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만큼은 타협하지 않기로 한다. 불혹에는 똥강아지들이랑 방방곡곡 맛집투어를, 예순이면 읍내 게이트볼 일인자로 명성을 떨치겠고, 팔순 무렵 경로당 한가운데에서 ‘구구팔팔일이삼사’를 외친다니 헉 벌써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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