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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n 05. 2022

K-좀비 가족 서사

-  <칵테일, 러브, 좀비>

 

1. 오늘 소개할 책은?     

조예은 작가의 단편집 《칵테일, 러브, 좀비》 중 표제작인 <칵테일, 러브, 좀비>를 소개한다. 요즘 날이 더워지고 있지 않나. 초여름의 느낌이 물씬 나는데, <칵테일, 러브, 좀비>는 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오컬트 좀비물이다.     


2. 오컬트 좀비물이라니, 독특하다. 줄거리를 자세히 알려달라.      

이 소설의 화자는 ‘주연’이다.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젊은 여성인데 어느 날,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온 아빠가 좀비가 되어 버렸다. 알고 보니 아빠는 뱀술을 마시고 좀비가 된 거였는데 이 뱀술을 마신 사람들은 모두 바이러스 1차 감염자가 되었고 더 나아가 2차 감염, 3차 감염까지 발생한다. 정부가 1차 감염자들을 사살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주연과 엄마는 아빠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에 빠진다. 수십 년의 시간을 아빠 뒷바라지에만 바친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좀비가 된 아빠를 절대 죽일 수 없다고 한다. “저 막돼먹은 인간 없이 사는 게” 무섭다고 한다. 주연은 엄마의 말을 듣고 자신에겐 아빠가 어떤 존재였는지 반추한다. 결국 주연은 고집불통이고 가부장적이었던 아빠를 완전히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아빠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3. 뱀술을 마시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점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소설에서 코로나19를 연상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코로나19 초기 이 바이러스가 박쥐의 몸속에서 약 40년~70년 사이 변이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된 적도 있지 않나. 이 책이 2020년에 출간됐으니 작가도 그걸 염두에 뒀을 거다. 일종의 팬데믹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싶다.      




4. 그밖에 이 소설의 재미요소가 있다면?     

일단 굉장히 짧다. 소설집 자체도 얇은데 다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금세 휘리릭 읽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특히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 분들이라도 쉽게, 속도감 있게 읽어낼 수 있을 소설이라 자부한다.

다음으로는 이 소설에 드러난 가족의 모습을 보며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딸이 엄마한테 아빠가 좀비가 되었다고 더 이상 살아 있는 아빠가 아니라고 하자 엄마가 이런 말을 한다.

"그럼 저게 살아 있는 게 아니면 뭐니? 술 마시고 첫차 타고 와서 하루 종일 처자다가 새벽 축구 보고, 아침에는 밥 달라고 앉아있는 게 네 아빠가 아니면 뭔데?"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쩐지 얼큰하게 약주한 다음 날 밥상 앞에 앉아 있는 우리네 아버지들이 생각나는 대사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전체가 현실에 대한 지독한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5. 가족 서사는 다른 소설들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맞다. 가족에 대한 소설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이 소설의 특별한 성취는 한국적인 소재인 K-가부장제와 '좀비'라는 서양의 크리처를 섞어서 K-좀비 가족 서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네이트 판 같은 데서 쉬이 볼 법한 소재로 장르소설을 빚었다는 게 재미있다. 장르적 쾌감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되고 다 읽고 나면 서사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6. 만약 소설 내용처럼 아빠가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소설이 재미있는 점 중 하나가 바로 그 질문에 있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정말 고민이 많이 됐다. 왜 <월드워Z> 같은 좀비영화만 봐도 좀비가 된 가족을 죽일 것이냐 말 것이냐 기로에 놓이지 않나. 나만 이렇게 머리 아프고 싶지 않다. 이 방송을 듣는 청취자 여러분들도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으며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온라인으로 청취하는 분들은 댓글을 남겨도 좋겠다. 책장을 덮고 이런 고민을 시작하는 순간, 에어컨의 냉기는 아마 필요 없을 것이다. 금세 서늘해질 테니까.   


김미향 에세이스트·출판평론가



2022년 6월 2일(목) 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원주입니다> '책 산책' 코너 진행 원고입니다

생방송오늘 원주입니다 | 디지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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