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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n 13. 2022

누구나 한 명쯤 마음에 품고 있을, 그녀

- 《그녀를 그리다》


1. 오늘 소개할 책은?     

네. 오늘은 좀 차분하게, 지난 계절을 가만가만 쓸어보며 반추할 수 있을 시집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해요. 박상천 시인의 신작 시집 《그녀를 그리다》입니다.     


2. ‘그녀를 그’ 린다니, 시인이 그리는 ‘그녀’는 누구인가.

네, 바로 ‘아내’입니다. 예고된 상실도 있지만, 때로 어떤 상실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잖아요. 시인에게는 아내와의 사별이 그랬다고 합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살펴보면 어느 날 새벽, 걸려온 전화에 깜짝 놀라 시인이 병원에 가 보니 이미 아내와 작별 인사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난 시간들이 시인에게는 의미가 없는 시간들처럼 느껴졌고, 급기야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의미 없는 시간의 한 구석 어딘가에/ 나는 버려져 있을 뿐이다."(<이불> 중에서)

시집 전체에 이처럼 “버려졌다”는 단어가 참 많이 등장하는데요. 이 ‘버려진 느낌’이 이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지배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3. ‘버려진 느낌’이라니 좀 쓸쓸하다. 시 속에서 이러한 상실감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이는가?

시집을 펴자마자 처음 등장하는 시가 <이불>인데요. 아내의 부재가 시인에게는 겨울이 깊어져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 ‘여름 이불’의 이미지로 남습니다. "가을을 지나 겨울,/ 그리고 그 겨울이 깊어졌지만/ 어느 날 문득,/ 덮고 있는 이불이 여름 거 그대로임을 알았다." 이건 다른 시들에서 단추가 떨어진 와이셔츠 소매로, 아내가 살아생전 너무나도 좋아했던 물품인 커피머신과 양치 컵에 대한 애틋함으로 화하는데요. 특히 아내가 늘 햇볕에 두고 말렸던 도마를 아내가 없는 지금, 시인이 내다 말리는 대목이 압권입니다. 평소에 아내가 도마를 햇볕에 말릴 때마다 시인은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아내가 부재하고 보니 그냥 세제로 씻기만 해선 도무지 도마의 김치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겁니다. 실제 아내는 떠나고 없지만 아내의 존재는 얼룩처럼 늘 시인의 마음에 남아 있는 거죠.           




4. 듣다 보니 마음이 저릿하다. 시인은 왜 그러한 감정을 시로 남겼을까? 시를 쓰는 게 오히려 더 고통을 배가시켰을 수도 있지 않나?

시인도 모르게 시를 쓰고 있었나 봅니다. 시인이 아내와 사별한 게 2013년인데 매년 아내에 대한 시를 몇 편씩 썼다고 해요. 시인이 내가 왜 이러고 있었나 돌이켜보니, 아내가 없는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대요. 아내에 대해 시를 쓰고 있을 때만큼은 안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를 쓰는 과정을 통해 아내는 시인의 곁에 없지만 그럼에도 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가 자신의 삶을 부드럽게 이어주던 ‘연골’이었음을 깨닫게 된 건데요. 여기서 이와 관련된 시 <연골> 속 몇 구절을 읽어드려 볼게요.


시간이 지나면서 연골이 점차 닳아 없어지는 퇴행성 관절염,/ 우린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지만 / 일상의 모든 관절이 갑자기 / 삐걱거리고 아프게 되어 버린 / 당신과의 이별// 일상의 관절 사이사이에 / 숨어 있던 당신이 /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후, / 나는 뼈와 뼈가 맞닿아 / 뜨끔 거리는 통증으로 다리를 삐걱거리며 / 오늘 지하철 계단을 오른다.”

   

5. 시구를 들어보니 울컥한다. 오늘 이 시집을 소개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 모두 가슴속엔 “그리”고 있는 ‘그녀’가 있잖아요. 저는 이 시집을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읽었는데요. 시인의 ‘그녀’와 함께 자연스레 저의 ‘그녀’가 오버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녀’가 돌아가신 어머니이지만, 누군가에겐 애인일 수도, 다른 누군가에겐 가슴에 먼저 묻은 자녀일 수도, 또 어떤 이에겐 세상을 떠난 친구이거나 조부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를 그리다》는 삶의 비의 속에서 그리움의 정서를 길어 올립니다.

이 시집은 우리가 가슴속에 품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그녀’를 꺼내어 햇볕에 잘 말리면서, 우리의 눅눅하고 축축했던 마음까지 ‘보송’하게 말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들로 빼곡합니다. 왜 한 번 시원하게 울고 나면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 그런 기분이 들잖아요. 오늘은 청취자 여러분들도 그런 기분을 한 번 느끼시고, 시로부터 위안받는 저녁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시집을 골라봤습니다 :)                                           


김미향 에세이스트·출판평론가



2022년 6월 9일(목) 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원주입니다> '책 산책' 코너 진행 원고입니다

생방송오늘 원주입니다 | 디지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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