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집의 맛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뭉치 Feb 25. 2023

블루와 그린 사이

-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1. 오늘 소개할 책은?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다. 일본에서 태어나 1996년부터 영국에서 살고 있는 저자가 계층 격차와 다문화 문제로 신음하는 영국사회의 밑바닥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생생한 현실을 기록한 책이다.  2019년 출간 당시 제73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특별상, 제2회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 제7회 북로그 대상(에세이·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오늘 소개하는 전편의 후속작인 2편도 출간됐는데 시리즈 도합 일본에서만 100만 부 이상이 판매된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2.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저자는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겪는 복잡미묘한 사건을 관찰하며 다양성과 차별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풀어낸다. 명문 가톨릭 초등학교에 통학하던 저자의 아들이 돌연 동네 중학교 입학을 선언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공립학교 랭킹 최하위, 밑바닥 동네의 밑바닥 중학교’라 불리던 동네 중학교는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세계다. 저자는 학생 대다수가 백인인 학교에서 몸집이 작은 동양계 아이가 인종차별이나 폭력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부모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옐로에 화이트인” 아이(백인 노동계급 아빠와 일본계 엄마를 둔 영국인 아이)는 인종차별, 빈부 격차, 이민자 혐오, 성소수자 문제 등 복잡한 갈등이 뒤엉킨 그곳에서 인종도 국적도 계층도 다른 친구들과 부딪히고 싸우고 고민하며 성장해 간다.   

  

3.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연 학교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최근 OTT에서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았다. 그 드라마 역시 학교라는 곳에서 계층과 계급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서 저자가 살고 있는 곳은 영국 지방도시의 공영주택지가 모여 있는 동네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가난한 동네’지만 실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사람과 공영주택을 구입한 사람, 구입한 공영주택을 최신 유행에 맞게 리모델링한 사람이 섞여 살고 있다. 그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에도 무상 급식 대상자와 중산층, 이민자와 원주민, 백인과 유색인종이 섞여 있다. 저자는 아이가 백인에게 인종 차별을 당하거나 몸집이 작아 폭력을 당할까 봐 걱정했지만 차별과 폭력의 양상은 한층 복잡하다. 이민자와 유색인종을 배척하는 건 또 다른 이민자였고, 식당에서 음식을 훔쳐 먹은 친구를 타이르던 아이들이 벌을 내리듯 폭력을 가했으며, 혐오 발언을 일삼던 아이는 ‘쿨하지 않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피해자는 무조건 피해자이고 가해자는 무조건 가해자인 게 아니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 늘 이와 같은 일들이 있었다. 지인들과 얘기를 해 봐도 다 비슷하더라. 이 책 속 아이들 역시 ‘나와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걱정을 가장한 편견을 내비치고,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함과 취향의 자유를 근거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4. 어찌 보면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맞다.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이라 치부하기에는 이미 사회 곳곳의 분열과 갈등이 뿌리 깊다. 책 속에서도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하는 어른들의 논쟁, 이민자에 대한 이중적 태도, 하층 계급을 바라보는 중산층의 차가운 시선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어른들의 시선 아래에 아이들의 전장은 이미 예견된 셈이다.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수영장마저 나뉘어 있는 중학교 수영대회의 모습은 21세기 계급사회의 풍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아들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담하게 관찰하던 저자의 시선은 ‘시민사회’의 자부심이 뿌리내리고 있는 영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격차와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학교 너머로 드러난 건 보수 정권의 긴축 정책으로 ‘무너진 복지국가’와 ‘막다른 길에 몰린 다문화 사회’였다. 공영주택지에서, 수영장 이쪽과 저쪽에서, 교실 뒷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사회의 위험성을 저자는 엄중히 경고한다.     


5. 일견 어두운 이야기 같기도 한데, 희망적인 내용도 있나.

그렇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집단 따돌림은 계속되고, 해진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 하지만 아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이해할 수 없어도, 때로는 나를 싫어하는 친구라 해도 인정하고 공존한다. 각종 이슈로 편을 갈라 대립하고 상대파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오히려 아이들은 ‘나와 다른 사람도 있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른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차별과 다양성이라는 난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씩 돌파해 나간다. 혐오 발언을 일삼는 친구에게도 손을 내밀고, 가난한 친구를 자존심 상하지 않게 도우려 애쓰고,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친구에겐 “시간을 들여 정하면 된다”고 격려한다. 때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과감하게 ‘일단 지금은 이 정도로 두자’ 하고는 정면을 향하며 자꾸자꾸 새로운 무언가와 마주치는” 아이들의 태도는 같은 고민을 짊어진 동시대의 어른들에게도 큰 용기를 준다. 자신이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라며 우울해하던 저자의 아들은 책 후반부에 이르러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그린”이라고 말한다. 전에는 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불안했고, 인종차별 같은 일을 겪어서 좀 기분이 어두워 스스로 ‘블루’라고 했다면 이제는 미숙이나 경험 부족의 상태인 10대의 색 ‘그린’이라는 거다. 앞으로 이 색깔은 계속 변하지 않을까.      


6.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다. 그렇다면 다문화 사회를 살아갈 우리가 중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문화 사회를 살아갈 우리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엠퍼시empathy’(공감)를 강조한다.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이야말로 빈부 격차, 세대 갈등, 다문화 문제, 정치적 반목 등 온갖 분열과 대립이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엠퍼시’는 어른들도 선뜻 답하기 어려운 심오한 개념이지만 저자의 아들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한다.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라고. 어찌 보면 역지사지의 자세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올해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야 할 것도 공감 아닐까.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1월 5일(목) 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원주입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산책' 코너 진행 원고입니다

생방송오늘 원주입니다 | 디지털 KBS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온라인서점 외에도 쿠팡, 위메프 등 각종 커머스 사이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알라딘 http://asq.kr/XE1p

인터파크 http://asq.kr/PH2QwV

예스24 http://asq.kr/tU8tzB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 안의 문제, 가족 밖의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