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는 곧 상상력의 위기?
- 《대혼란의 시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사회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도 출신의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가 환경 불평등에 관해 쓴 책이에요. 인도의 최고 문학상 샤히타아카데미상과 프랑스의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을 받은 작가인데요.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있어요. 2018년 제8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였거든요.
이 책의 제목인 ‘대혼란의 시대’는 기후 위기인 오늘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저자는 “우리 시대의 ‘문화’가 지구 온난화에 맞서는 데 실패했다”며 기후 변화의 규모와 위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을 문학, 역사, 그리고 정치의 차원에서 탐구해요.
1부에서는 문학이 기후 변화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현상에 주목해요. 2부에서는 비서구인의 관점에서 화석 연료와 세계사의 관계를 들여다봐요. 정치의 차원에서 기후 위기를 탐구하는 3부에서는 개별화한 상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해요.
《대혼란의 시대》아미타브 고시 지음 l 김홍옥 옮김 l 출판사 에코리브르 l 가격 1만5000원기후 위기와 환경 불평등에 관한 책은 많지만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해요. 첫째는 기후 변화라는 전 지구적인 위기를 비서구적 관점에서 담았다는 점이에요. 둘째는 ‘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는 주장이에요. 이 책에서 저자는 녹슨 무기로 무장한 인문학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위기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안을 고민하도록 촉구하고 있어요. 그가 제시하는 환경 불평등의 해법은 인간 존재를 새롭게 그려 보는 ‘상상력’을 복원하는 거예요.
저자는 말해요. “소설이라는 프로젝트가 굳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생하는 식이 될 필요는 없다. 픽션―소설뿐 아니라 서사시와 신화까지 포괄한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정법으로 세상에 접근하는 것, 세상을 마치 그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인 양(as if) 그려내는 노력이다. 다시 말해, 대체할 수 없는 픽션의 빼어난 능력은 바로 여러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능력이다. 다른 형태의 인간 생존을 상상해보는 것이야말로 정확히 기후 위기가 제기하는 과제다. 기후 위기는 세계를 오직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끝내 집단적 자멸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대신 세계가 어떻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구구절절한 수치로 기후 위기와 환경 불평등을 설명하지 않아요. 대신 문학, 역사, 정치 다방면에서 기후 위기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게 도와요. 마치 환경생태 분야의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같아요.
그동안 비슷비슷했던 기후 위기 책에 질려 있었다면 저자의 주장이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다가올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2월 13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2/13/20230213000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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