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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l 03. 2023

최초의 유령의 집은?



《나사의 회전》헨리 제임스 지음 l 최경도 옮김 l 출판사 민음사 l 가격 8000원


독특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매력적인 미국소설이에요. 요즘처럼 뜨거운 여름날에 읽으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서늘해지지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여러 남녀가 모여 으스스한 유령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돼요. 이 특별한 모임에 참석한 더글러스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어느 여인의 기록을 읽어줘요. 그 여인이 22세 무렵, 블라이의 시골 저택에서 가정교사로서 마일즈와 플로라 남매를 돌보았던 경험을 기록한 거였지요.


부모를 잃은 마일즈와 플로라는 삼촌이 맡아 키우고 있었어요. 런던에서 일하느라 바쁜 삼촌 대신 마일즈와 플로라는 시골 저택에서 저택을 관리하는 그로스 부인과 살고 있었어요. 액자식 구성인 이 소설의 내부 이야기 속 화자인 가정교사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플로라와 방학을 맞아 돌아온 오빠 마일즈에게 금세 매료돼요. 이들을 보살피는 것에 강한 책임감을 느낀 가정교사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하지요.


그런데 곧 저택에서는 여러 가지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벌어져요. 이상한 남녀가 저택 주변을 서성이고,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은 마일즈의 퇴학 통지서가 도착하고, 플로라가 이전과는 달리 가정교사를 멀리하기 시작해요.


믿을 수 없는 가정교사의 모호한 서술 때문에 사건의 실체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요. 읽는 사람은 책장을 넘길수록 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지만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지요. 저택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현실인지 환상인지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기게 돼요.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이 소설이 출간됐던 1898년 당시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기법이에요. 이러한 이 소설의 모호성은 오히려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작품을 ‘명작’이라 부르는 이유가 됐어요.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에서도 논의되고 있고요. 


또한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해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남성 캐릭터 옆에서 평면적으로만 그려지던 여성 캐릭터가 주를 이루었던 이전의 소설들과는 달리 입체적이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등장시켰기 때문이에요. 


‘나사의 회전'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의 주제와 캐릭터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거예요. 실제로 나사는 회전할수록 점점 더 옥죄어지는데요. 이 작품 속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관계 역시 점점 더 긴장되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걸 의미해요.  


이처럼 이 소설은 현대 미국문학의 기반이 되었으며, 헨리 제임스의 스타일과 주제는 여전히 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블라이의 시골 저택’은 ‘귀신 들린 집’의 원형이 되어 수많은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발레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지요. 저택의 고요하고 어두운 분위기, 그 속에서 들려오는 불규칙한 소리와 어두운 그림자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긴장감을 조성하기에 더없이 좋으니까요.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디 아더스>와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진 <블라이 저택의 유령>이 유명해요. 


여러모로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다는 거예요. 저자가 제시하는 퍼즐의 조각들을 스스로 맞춰가며 책장을 넘기는 독서 경험이 공포영화를 보는 것보다 흥미로울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7월 3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7/02/20230702015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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