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이고 감성적인 성장을 이루길 바라는 이들을 위한 책
《존재의 순간들》버지니아 울프 지음 l 최애리 옮김 l 출판사 열린책들 l 가격 1만3800원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입니다.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자기만의 방》 등은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지요.
울프는 뛰어난 작가이자 사상가였지만, 울프의 사유와 감성은 소설 속에서는 종종 가려지기도 해요. 하지만 이 책 속 산문들을 통해 울프의 섬세한 관찰력과 시적 감각,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어요. 울프는 산문을 통해 소설에서 다 말하지 못했던 문학, 예술,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쳤거든요.
이 책은 울프의 개인적인 삶과 경험에 대한 글들을 모은 산문집입니다. 여기에는 울프의 유년시절, 가족, 친구, 여행, 자연, 예술 등에 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어 울프의 사유와 감성을 엿볼 수 있지요. 또 여성의 권리, 전쟁과 평화, 사회의 부조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쓴 울프의 산문들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키워줘요. 특히 섬세한 표현력, 명확한 논리가 돋보이는 울프의 산문을 통해 글쓰기의 모범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산문 중 <나의 아버지>는 울프의 성장과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아버지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 글이에요. 울프는 아버지를 매우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어요. 아버지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었지만, 동시에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면이 있었지요.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그런 성향은 더욱 강해졌어요.
울프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에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이해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쓴 글을 읽으며 아버지에 더 깊이 알아가려고 노력했지요.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이런 울프의 복잡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산문이에요. 이 글을 통해 울프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지요.
어린 시절의 울프는 자연과 가까이 지냈어요. 활발한 아이였던 울프가 산과 숲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신비한 자연의 생명력을 어떻게 지켜봤는지는 <나비와 나방: 9월의 곤충들>이라는 산문에서 엿볼 수 있어요. 울프는 런던 한복판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매년 여름 온 가족이 세인트아이브스의 탤런드 하우스로 가 서너 달씩 머물곤 했거든요. 그때 작은주홍부전나비, 먹그늘나비 등 많은 나비들을 보았다고 해요. 나이가 들면서 호랑나비나 흰마리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 건 아마도 “더 이상 수집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눈에 잘 뜨이지도 않게 된 것” 아닐까 추측해요. 이 산문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아내기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읽으면 좋아요.
이처럼 일상적인 경험에서부터 고차원적인 사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울프의 산문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지적이고 감성적인 성장을 이루길 바라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1월 22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1/22/20240122000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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