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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Feb 03. 2024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노하고..

《이끼숲》천선란 지음 l 출판사 자이언트북스 l 가격 1만5800원



이 책은 디스토피아(dystopia, ‘이상향’, ‘낙원’을 뜻하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공동체 또는 사회. 가장 부정적인 가상의 암흑세계)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매혹적인 서사를 펼쳐내는 연작소설집이에요. 연작소설집이란, 독립된 완결 구조를 갖고 있지만 연관성이 있는 소설들을 묶은 작품집이라는 뜻이지요.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세 편의 소설엔 미스터리와 슬픔, 상실의 빛이 서려 있어요.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고 표현한 건 그만큼 저자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세 편의 소설 모두 청소년들이 주인공이에요. 모두 변화를 위해 저항하고 싸우지요. 우리 미래에 희망이 있다면 그건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들이라고 믿는 작가의 신념이 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에요.


각 소설들의 배경은 동일해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늙은 나무를 뽑고 어린 나무를 심은 정책이 걷잡을 수 없이 잘못된 방향으로 뻗어가면서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지요.


<우주늪>은 쌍둥이 자매 의주에게 보내는 의조의 편지글 형식으로 구성돼 있어요. 인구 제한을 위해 쌍둥이 출산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의조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살아가요. 의조를 살리고 싶었던 엄마와 의주를 살리고 싶었던 아빠의 가위바위보 대결에서 아빠가 이겼기 때문이지요. 차마 의조를 죽일 수 없었던 부모는 의조를 집 안에 숨긴 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마치 늪지대에 가라앉아 있는 악어처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의조는 어쩌면 자신이 누렸을 수도 있었을 집 밖 생활을 하는 의주를 시기하고 미워해요. 그러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아파하지요.   


그리하여 의조는 늪 아래로 더 깊이 빠져드는 쪽을 택해요. 환풍구 너머의 배관 통로를 기어다니면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지하 도시를 오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그렇게 배관 통로를 기어다니다 의조는 치유키를 만나게 돼요. 치유키를 통해 글자를 배운 의조의 삶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져요. “내 생각이 글자로 옮겨지다니. 엄청난 일이야. 이건 어떤 세상을 옮기는 일이라고. 그래서 매번 문장을 쓸 때마다 건축하는 마음으로 해. 나는 건축도 뭔지 잘 모르지만, 이 지하 도시와 같은 거 아니겠어? 무너지지 않게, 헷갈리지 않게, 망가지지 않게.” 건축하는 마음으로 배관 통로 한 부분에 “여기로 가면 냉동실, 위험.”이라고 썼던 의조는 누군가의 답글을 받게 돼요. 글자를 배워 누군가에게 생각을, 자신의 세상을 옮겨본 기쁨을 느낀 의조는 이제 자신에게 답글을 남긴 사람을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해요.


다른 두 편의 소설 역시 독특한 분위기가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들이에요. 작가의 섬세한 문장과 상상력을 느끼며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해 보고 자신을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짚어보세요. 더 넓은 세상, 더 나은 미래와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1월 29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1/29/20240129000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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