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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상 May 17. 2020

[Review] 이해할 수 없는 순간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표지에서부터 오는 강렬함에 사로잡혔다. 제목 역시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로 '거의'라는 단어에 의문을 품게 했다. 그리고 보이는 프리한 스타일의 남자, 그리고 칙칙함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건져온 듯한 톤다운된 흙색 표지는 무언가 심오한 책이라는 첫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그 첫인상은 맞아떨어졌다. 


1.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이 책의 저자인 그는 미국의 소설가로 1962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8년 46세에 사망했다. 대학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졸업논문으로 쓴 장편소설 《시스템의 빗자루 The Broom of the System》가 1987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 후 1996년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형식 과잉의 두 번째 장편소설 《무한한 재미 Infinite Jest》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얻었다. 


물론 월리스는 소설로만 주목받은 작가는 아니었다. 문학비평, 글쓰기 창작 수업, 에세이로도 이목을 끌었다. 특히 현대적 실존의 단면들을 예민하게 느끼고 그걸 설명하려고 했던 에세이는 그의 문학적 성취를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이다. 



재미있게도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책 표지와 정말 똑같이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관련된 일화 중 유명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대학 졸업식에서 한 그의 연설이다. 

요약하자면 '생각하는 것' 보다 '어떻게 생각할지'에 초점을 두라는 연설이다. 더 나아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매일 하는 작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더 나은 자신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8CrOL-ydFMI



2.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해되는 순간


이렇듯 그의 사고는 독특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 상황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그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재미있게도 그의 시선은 처음 접했을 때는 무언가 어색하지만 계속해서 곱씹어보면 탄성을 내뱉으며 깨달음을 얻도록 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첫 챕터는 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도록 해준다. 기자 시절 축제에 참여해 관련 취재를 하던 도중 일어나는 일을 묘사했다. 하지만 여느 소설처럼 극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정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풍경을 그저 '관찰'하고 '고찰'한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보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체 왜 이런 문장을 책에 서술해놓은 것인가, 뚜렷하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을 전하려고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하나 싶다. 책을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그것도 전공서나 전문 서적이 아닌 그저 에세이일 뿐인 책은 나에게 혼란을 주었다. 

'대체 무슨 책이야;' 하고 뒤집었을 때 보이는 문장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끝까지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따라가면 마주하게 되는 진실'


이 문장은 지금 내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그래도 그의 시선을 찬찬히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묘사를 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내 배경지식으로 이루어진 나의 그림이 아니었다. 정말 '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풍경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꾹 참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자 보이는 그의 시선과 생각은 내 머릿속 구석에 데이비드 씨가 직접 와서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에세이는 깊이가 얕았구나, 에세이가 이렇게나 깊고 심오할 수가 있구나를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사실 다른 챕터들은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그의 글들을 조각조각 모아 붙인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덕분에 에세이에 대한 시선이 새로 생겼음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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