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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상 Jun 21. 2020

[Review] 결국 판단은

1996년 어선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다. 

그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1. STAND BY 


 극의 시작은 배를 재현해놓은 무대에서 시작한다. 한쪽에 조명이 밝게 켜지며 배우들은 조명을 바라보고 각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누구는 누워서, 누구는 벽에 기대어서, 누구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기도하기도 한다. 



"STAND BY" 


외마디 외침과 함께 그들은 배를 움직이는 부품으로, 배의 용도를 '고기잡이'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단장, 항해사, 기관장, 주방장, 선원 등 각자 맡은 임무를 다하며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발생하는 수직구조에서 부터 야기되는 계층적 차별과 한국인과 조선족이라는 같지만 다른 차이에서 나타나는 차별은 이들을 극한으로 내몰았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준비하고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지만 배 안의 구성원들은 '스탠바이'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서로를 음해하고 시기하는 건 기본이고, 배를 이끌어야 할 선장, 기관사와 같은 직급자는 선원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긴다. 


목숨 걸고 실질적인 업무를 하는 선원들에게는 최소한의 보상을 하고자 머리를 굴리는가 하면 한국 국적이 아닌 조선족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국적이 없어도 돈을 준다고 회유했음에도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선원들은 서로 도우며 업무를 하기보다는 조선족과 한국인으로 파를 나누어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배 구조가 이들을 분리해두었기 때문이다. 


2. 무대 


무대는 앞으로 돌출되어있고, 높이가 꽤 있어서 좌석에 앉았을 때, 생각보다 무대가 가까워서 놀랐다. 고개를 젖혀 위를 바라보아야 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극장에서 배를 재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구조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3층으로 구역을 나누고, 각 층에 3~4개의 방을 두어 공간을 분리했다. 그렇게 무대는 각 층과 공간을 분리하여 작은 배에서도 분리됨을 보여주었다. 조명을 이용하여 각 공간의 명암을 표현하였고, 음악과 배우들의 제스처로 매가 흔들림을 표현하였다. 


배라는 작은 공간에서, 그 안에서 또 각 공간으로 구분하여 차별을 나타내었다. 

3. 판단은 결국 


배에서 벌어지는 일은 직접 보지 않은 제삼자의 입장으로서 뭐라 단언할 수 없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한국인을 살해한 조선족들에게 처벌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법적 접근 이전에 과연 그들이 어떤 이유로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였을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불법적으로 승선한 그들은 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이들을 이용하는 한국인들이 있다. 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인이지만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법의 굴레를 보호로 바꾸었다. 사람을 하나의 귀중한 존재로 다루어야 함에도 그저 돈으로만 취급하는 모습은 같은 한국인이지만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구차하게 돈을 벌고, 밀수를 하면서도 배에 승선한 조선족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에 탄 적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다고 감히 사람을 해한 조선족들이 상대적 피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돈을 목적으로 같은 배에 탑승해 암묵적으로 원양어선의 룰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 신분이 어떻게 되었든 어떤 목적으로 배에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들에게 필요한 건 돈이니까.

연극에 대한 설명을 보면 과연 누가 악한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누가 악인지 판단하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함께 배에 승선해 분리된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누가 악인 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얽혀있는 그들의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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