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아트인사이트 vol1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이라는 주제로 아트인사이트에서 첫 번째 글 모음집을 출간했다.
제목부터 참 아름답다.
좋아하는 것을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자체로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내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취미를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행위에 당당하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그 기대에 맞게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갈 때마다 느껴지는 저자의 생동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고민하는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무래도 문화예술 기반의 플랫폼이다 보니 뮤지컬, 연극, 미술 등 문화예술 전반의 영역에 걸쳐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이 느끼는 벅찬 감정을 종이 너머로 전해 듣고 에디터를 찾아 기고글을 읽어보면 마치 내가 그들이 된 것처럼 생생한 순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잠시 동안 포근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말할 자신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멀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아닌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해 보겠다고 이것저것 건드려볼 뿐이다. 누군가 당당히 취미로써 가꾸고 있는 것을 나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엿한 취미, 당당한 '좋아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겠다는 얕은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나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남의 취미는 딱 거기까지이고, 내가 호기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려 애정을 듬뿍 바른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던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묵직한 중저음의 베이스 기타를 들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악기를 만나 호흡을 맞춘다. 처음에는 삐걱거려도 한 마디씩 정성 들여 호흡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완전한 하나가 되어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음악의 중심을 잡고 있는 베이스를 연주하기 때문에 흩어져있는 팀을 하나로 모아 내 지휘 아래 둔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다. 건조하고 눅눅한 냄새가 나는 연습실에서 벗어나 무대에 오르는 순간은 어찌나 황홀한지. 번쩍이는 조명과 웅장한 세트에 발을 딛는 순간까지는 기억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그다음 기억은 다시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다. 그만큼 모든 걸 쏟아붓는 5분의 짧은 순간을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아붓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대를 밟을 기회가 없다. 악기를 연습할 여건은 물론이거니와 팀원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와 만난다는 행위 자체가 어려워진 시기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악기에서 손을 떼었고, 그땐 그랬지 하며 추억을 회상할 뿐이다.
문화예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예술 플랫폼에서 글을 쓰며 활동하고 있는데도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연과 전시회, 시사회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인프라적 한계, 시기적으로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장소에 가기 꺼려지는 상황, 직장인이 되고 나서 생기는 시공간적 한계가 문화예술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렵게 한다. 그렇다고 문화예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좋아한다.
여전히 정말 사랑하고 아낀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찬찬히 음미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자신감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제 글 쓰는 것도 그만해야 하나 생각을 했다. 위에 서술한 이유 때문에서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문화예술적 안목을 키워가는 유능한 에디터들이 있는 반면에, 과거의 잔재를 긁어모아 만든 한정적인 경험을 배경으로 하며 발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과연 이름을 걸고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말이다. 그런 와중에 아트인사이트 vol1이 출간되었고, 에디터들의 귀한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좋아합니다.
혼자라면 들어보지도 못했을 법한 공연도, 책도, 영화도 만나볼 수 있었고,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던 생각과 글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펼칠 수 있었고,
이렇게 부족한 글을 조금씩 조금씩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에게 있어 문화예술은 '소통'이다.
나에게 있어 문화예술 역시 소통이다. 문화예술은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향유하며 소통하는 것, 그것이 문화예술을 즐기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장르 불문하고 수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 창작자의 고뇌와 가치관이 담긴 귀한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초반에 사활을 걸지 않으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좋은 작품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그 역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후에 존재하여야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품이 생산되어 세상에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여전히 부족한 역량이고, 솜씨이지만, 누군가의 고뇌와 창작이 나를 통해 세상 빛을 단 한줄기라도 더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좋아하는 것을 조금만 더 붙잡고 좋아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마음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