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목요일 밤만 되면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하는 루틴이 있다.
부지런히 씻고 밀린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오늘의 나에게 선물하는 치킨을 한 마리 주문한다. 그리고 치킨이 올 때쯤이면 티비를 켜고 세팅을 한다.
그리고 시작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의대 동기 5명이 같은 대학병원에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드라마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좋아하는 이유는 '포근함'이다.
기존에 봤던 의학 드라마는 뻔한 전개와 뻔한 연출로 분명 다른 드라마를 보는데도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주인공은 일단 남들과는 조금 다른 괴짜여야 한다. 하지만 성격과는 다르게 실력 하나는 정상급이여야한다! 그렇게 수술실에 들어가 '매쓰!'를 외치며 극적인 순간에 환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낸다.
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줄여서 슬의라고 하자)은 의료행위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의사를 의료인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사람으로 보여준다. 또한 환자를 드라마의 극적 연출을 위한 도구로서 소비하지 않고 주인공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스토리와 감정선의 중심을 환자에게 두어 더 쉽게 몰입하도록 해준다. 마지막으로 밴드 요소이다. 독특하게도 주인공 5인방은 함께 밴드를 하며 우애를 다져왔다. 때문에 드라마의 마지막에는 항상 밴드 연주가 나온다. 아무 곡이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뮤지컬이나 연극의 커튼콜처럼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와 연관된 곡을 연주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감정선을 타고 음악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슬의는 5명의 주인공을 각기 다른 파트에 배정하여 대학병원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흉부외과, 소아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간담췌외과로 구성되어있어 우리가 알고 있던 환자의 모습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자연스레 표현할 수 있는 환자의 폭도 넓어지고 그에 따른 의사의 태도도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다. 보통 병원에 심각한 수술이라 생각하면 성인이 피를 뿜는 장면을 생각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수술 장면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다. 다만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케이스를 보여주는데, 그만큼 의사의 부담과 고민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 현실 속의 의사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의사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환자를 대할 때 냉정함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의사마저 불안해하고 슬퍼하면 어느 보호자가 환자의 목숨을 의사에게 맡기겠는가. 한 사람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각오를 다지고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여러모로 존경심이 든다. 마치 영화 속 히어로처럼 활짝 웃으며 나만 믿으라고, 나만 따라오면 다 괜찮을 거라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환자와 보호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위와 비슷하다. 단순히 극적인 연출을 위한 역할이 아닌 주인공과 동등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환자가 병실에 오래 있어야 하는 여건 때문에 힘들어도 함께 곁을 지키는 보호자, 그리고 그런 보호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미소 지으며 버티는 환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여 같이 슬퍼하고 기뻐한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어린아이인데도 심장이 약해 기구를 달고 병실 작은 공간에 갇혀 있는 아이들, 성인임에도 큰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한 환자, 같은 병을 앓고도 자기 관리를 못해 주변에 폐만 끼치는 환자, 본인이 제일 힘들고 어려울 텐데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삭막한 병실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환자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환자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마주하게 한다. 그들도 사람이었구나. 흰색 환자복을 입고 하얀 침대에 누워 환자라는 신분으로 약자로 분류되어 보호받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들돔 사람이고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인격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시켜준다.
슬의는 한 화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의사와 환자, 그리고 보호자의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면서 그들의 호칭, 즉 '의사', '환자', '보호자'로서의 이야기를 '사람'의 이야기로 전환시킨다. 이런 흐름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하나로 모으는 것이 마지막에 나오는 밴드이다. 드라마 중간중간 '오늘 곡 뭐야?' 하며 해당 화의 주제를 강조하기도 하고, 노래의 가사를 통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무리를 지으며 한 화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더 재미있는 점은 밴드를 하기 위해 녹화 시작 전부터 멤버들이 직접 레슨을 받고 합주한다는 것이다. 처음 만져보는 악기임에도 정성 들여 배우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더 정이 갈 수밖에 없다.
'메디컬'이라 쓰고, '라이프'라 읽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우리네 평범한 삶의 이야기다.
언제부턴가, 따스함이 눈물겨워진 시대.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작지만 따뜻하고, 가볍지만 마음 한 켠을 묵직하게 채워 줄감동이 아닌 공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결국은, 사람 사는 그 이야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