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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매니저 막내딸

너에게 사랑을 배운다

by 이디뜨

에어컨 필터를 떼어내 화장실에서 세제 풀어 솔로 문지르고 있는데 딸아이가 곁에 와서 물었다.

"엄마! 얼굴에 패드 붙여줄까?"

잠시 뒤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패드가 양볼에 얹힌다.

생각지도 않은 세심한 케어에 끈적하게 얼룩 많은 필터를 문지르는 내 팔에 흥이 실린다.


가스불 앞에서 찌개 끓이고 호박전 하고 있는데 목에 휴대용 선풍기가 걸린다.

또 막내 손길이다.

"아고 고마워. 왜 그렇게 엄마를 챙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리 쪽으로 선풍기 바람이 온다.


이 아이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엄마를 챙겨줄 건 없는지 궁리하는 엄마 매니저일까?

소파에서 잠들면 어느새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는 사람도,

나 먹을 컵라면 물을 전기주전자에 올리고 잠시뒤에 보면, 이미 컵라면에 물을 부어 놓은 사람도 딸아이다.


막내는 유독 우리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를 닮았다.

나보다 외할머니를 더 닮아 신기하다 했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 딸아이가 무심코 그러나 매우 자주 나를 챙겨줄 때면

이 아이는 우리 엄마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니면 전생에 우리 엄마였거나...

그것도 아니면 사랑하는 큰딸 네 아이 키우는데 힘들까 봐,

엄마랑 제일 닮은 막내 통해 보살펴 주시는 걸까?




딸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 납골당에 붙여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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