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군대 보낸 날의 이모저모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으면 절대로 우울하지 않아요. 부모들은 자식을 걱정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사신 거예요. 속 썩인 자식이 나를 살린 거예요."
인문학 강연자 고미숙 선생님의 강연 쇼츠에서 나온 말이다. 고된 세월이 느껴지는 주름진 얼굴에도 '우울'이란 단어는 절대 떠오르지 않는, 우리 양가 부모님들이 생각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을 나에게 대입해 보았다.
'아! 나는 앞으로 최소 18개월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겠구나.'
"엄마, 아빠가 아들 덕에 연천을 다 가보네. 연천 전곡리 유적지 국사 시간에 배운 거잖아."
시원한 스포츠머리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가 급하게 편지 썼어. 하고 싶은 말 거기 다 적었으니까 읽어 봐."
아들에게 편지를 건네고, 회색빛 구름이 낮게 가라앉은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꽤 여러 번 상상해 왔던 '아들 군대 가는 날'.
그날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흐린 날 무거운 책가방 들려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결혼식 할 때도 비가 오고 이사할 때도 비가 오더니, 이제는 아들 군대 가는 날에도 비가 많이 오네?'
비를 몰고 다니는 우리 부부는 어제, 아들을 육군 신병 교육대로 입대시켰다.
연천에 도착하자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장대비로 변했다. 입구부터 수많은 인파가 우산을 쓰고 넓은 부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은 엄격한 출입 확인을 거쳐 교회건물에서 잠시 대기했다. 곧이어 관계자들의 지시대로, 신병들만 밖으로 나갔다. 신병들만 먼저 강당으로 가서 입소식 연습 훈련을 미리 받는다고 했다. 그 사이 가족들과 친구들은 교회 건물에서 훈련소 생활에 대한 설명시간과 Q&A 시간을 가졌다.
원래 6주인데 추석연휴가 끼어 신병 훈련 기간이 한주가 늘어났다. "어차피 제대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까, 훈련소에 한 주 더 있는 게 나아." 주변에 어느 아버지의 소리가 들려왔다. 주로 어느 지역, 어느 사단에 배치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일산, 파주, 철원, 연천 등의 전방에 배치된다고 했다. 월급은 얼마씩이며 '나라사랑카드'라는 것을 이용해 제대할 때까지 2천만 원 넘게 저축해 올 수 있다는 소식에, 부모들의 어둡던 눈빛이 잠시 반짝였다. 신병교육소 건물 내부가 올해 리모델링 되어, 기숙사처럼 2층 침대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소식에는 작은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중 한 사람이 나였다. "발은 뻗고 잘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아들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드디어 입소식 시간이 다 되어 다시 우산을 쓰고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 한가운데는 약 300명의 빡빡이 머리를 한 청년들이 긴장된 차렷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30분 사이에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 아들의 입대를 실감하게 했다. 나는 강당에 들어서서 몇 초 만에 아들을 찾아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식까지,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내 아이를 한눈에 찾아내는 것이 스스로 신기하고 재밌었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2층 관중석에서 아들이 서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엄마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는 사이에 입소식이 시작되었다.
1000명은 모인 강당에서, 서로를 향한 눈빛에 수많은 말풍선이 그려졌다.
"건강하게 잘 다녀와."
"편지할게."
"엄마, 아빠도 건강히 계세요."
"너한테 더 잘해 줄걸."
"군대 가기 전에 좀 더 잘할걸."
"휴가 나오면 연락해."
'이심전심',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그 자리에, 같은 마음으로 모두들 무사히 신병훈련을 받고 군생활도 잘 마치기를 기원했다.
씩씩하게 보내 주고 싶었는데, 마지막 진짜 헤어지는 순간에는 나도 울음이 터졌다. 멀찍이 신병들 대열에 서있던 아들은 밝고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엄마, 아빠를 안는 짧은 순간에는, 자기도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남편은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참는 것이 보여서 더욱 마음이 아렸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잘하고 올 것이라는 믿음과 걱정되는 마음을 반반씩 안고 그렇게 아들을 보냈다. 씩씩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나라의 아들'로.
어느새 빗발은 더 굵어지고 금세 하늘조차 더 어두워졌다. 다들 눈이 빨개진 채 집으로 향하는 우산 행렬이 이어졌다. 신병훈련소 곳곳에서 우비를 입고 늠름하게 안내하는 병사들의 모습에, 우리 아들도 곧 적응해서 잘 지내겠지 하는 마음에 잠시 위안이 되었다.
입소식이 끝나고, 응원하러 와준 여동생과 근처 스타벅스 카페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언제 만나도 할 얘기가 많은 우리. 여동생은 아이가 둘이다. 큰애는 군에 간 우리 둘째와 동갑, 둘째는 우리 셋째와 동갑이고 각각 성별은 반대이다. 동생네와 위아래층 대각선에 사는 동안 아이들끼리 친구처럼 너무 잘 지내줘서, 한동안 육아를 재밌고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널찍하고 쾌적한 스타벅스 2층 통창 밖으로 어느새 비는 그치고, 은빛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철새로 보이는 새떼가 시옷 자를 그리며 몇 번을 날아갔다.
'오늘은 날씨가 꼭 내 마음 같네.'
흐림에서 시작해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가 장대비로 바뀌더니,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과의 즐거운 담소 시간에는 또 하늘이 맑게 갰다.
동생과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사이, 남편 전화로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시 동안의 통화가 이어지더니 아버님이 나를 바꿔달라 하셨나 보다.
"여보세요? 네! 아버님!"
"그래. 내다. 네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다 안다. 자식 키우면 그런 순간이 오는데, 잘 지나간다. 걱정하지 말고 있어라. 추석 때 보자."
평소 감성적인 성향의 F 다운 아버님의 위로였다.
집으로 가는 차 안. 이번에는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을 통해서, 애 보낼 때 많이 울지 말라는 당부를 오전에 들었었다.
"여보세요? 네! 어머님!"
"애 잘 들어갔나? 저녁은 묵었나? 애 앞에서 많이 울지 말지. 엄마가 많이 울면 애 들어가면서 속상하다."
평소 사고형인 T 성향다운 어머님의 위로였다.
정반대 성향의 두 분이 각각 내게 전해 주신 말은, 내 마음에 같은 모양으로 새겨졌다. 바로 하트 모양이다.
동생이 챙겨 온 영양제랑 먹거리, 마사지 도구까지 전해받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도착하니,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수료식 때 부대 가까이에서 쉴 수 있게 펜션을 예약해 두었다는 소식이었다. 수료식 후부터 복귀 시간까지 편하게 맛있는 거 먹이고 쉬게 해 주라는 배려이자 선물이었다. 느릿한 언니의 성향을 아는 동생이기에, 고맙게도 빨리 해결책을 제시해 준 것이다.
저녁에는 글빵 단톡에 아들의 입대소식을 남겼다. 몇몇 작가님들이 위로의 말씀과 응원의 한마디를 해주셨다. 아들을 입대시키고 울적하고 허전했는데, 아버님, 어머님과 여동생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받은 하루의 끝. 아직 얼굴은 모르지만 글로써 마음을 나눈 분들의 따뜻한 한마디도 참 크게 다가왔다.
'표현해 주는 것은 정말 큰 위로가 되고 고마운 일이구나.'
"엄마! 아빠! 나 군대 가 있는 동안 산책 많이 하고, 음식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그리고 일찍 주무세요."
아들과 산책하던 어느 날, 불쑥 꺼낸 아들의 당부가 생각난다. 딸만큼 표현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 말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2일 차인 오늘 멀리서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들! 엄마가 편지에 썼지? 군대에서는 건강이 제일이야. 좌우, 위아래 잘 살피면서 딱 중간만 되게 지내다가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