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 #10 기록하는 만큼이 내 인생이다

by 퇴고의 늪


나의 문장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확신.

나의 글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

글을 쓰는 일이 더 이상 두려움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그 찰나를 지날 때마다 나는 더 좋은 글을 써 내려가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는다.


시급 500원짜리 웹소설 작가는 조금씩 체급을 키워가는 중이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부터 기록덕후의 싹이 보였던 게 아닐까.

고개를 빼고 들여다보면 사실 기록덕후의 세계도 무궁무진하다. 그 안에서도 나는 종이와 펜의 궁합을 유난스럽게 따지는 쪽에 가깝다.


내 책상 서랍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검은색 펜만 50자루가 넘게 들어있다. (‘이게 다 같은 검은색이 아니거든….’ 누군가에게 변명하듯 쭈뼛쭈뼛 설명을 늘어놔야 했던 그날 이후로, 어지간해서는 남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다.) 엄연히 그 세계에는 각자의 고유함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기록쟁이들에게 유명한 파이롯트 주스업 펜만 하더라도 0.3, 0.4, 0.5 굵기는 제각각 다르며, 각자 어울리는 지류가 따로 있다.


만년필은 더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나는 라미 2000, 파이롯트 데시모, 이 두 가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도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일어난 큰 변화이다. 그전까진 눈으로만 감상하는 수집가에 머물렀다. 그러나 만년필을 쥐고 기록을 하다 보면 쓰는 행위에 더 집중하게 된다. 획을 그을 때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보다 느린 호흡 속에 내 이야기가 조용히 뿌리내린다. 그 손맛을 알고 난 이후로, 나는 파이롯트 데시모(뚜껑이 없는 노크식이라 아주 편리하다)를 꼭 가방에 챙겨 다니고 있다.






기록한 만큼이 내 인생이다


내가 하는 기록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귀한 문장이 스치는 순간 낚아챘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두기 위해서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운전 중에는 휴대폰 메모장을 열고 음성 인식으로 기록한다.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으면 알아서 받아써주니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여유가 있을 때에는 노트에 만년필로 기록한다. 특히 머릿속이 뿌옇고, 뭔가 할 말은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정리가 되지 않을 때에는 꼭 만년필을 손에 쥔다. 해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다 못해 조바심을 끌고 온 날이면 마음을 다스리기에 제격이다.


단어들을 그러모으고 상상하는 법을 익혀간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생각들을 주워 모아 나의 언어로 다듬는다. 아찔할 만큼 현란한 문장에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누구든 쉽게 감응할 수 있도록 계속 매만진다.




<시급 500원짜리 웹소설 작가>, 이 브런치북은 나의 이야기가 비로소 내 인생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이다. 그저 막연하게 ‘기록’만 하던 습관이 ‘글’이 되고, 글이 모여 ‘책’이 되는 경험. 그 벅찬 감동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나는 다음 기록의 첫 문장을 쓰러 간다.




<시급 500원짜리 웹소설 작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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