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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사진전에서 울면서 뛰쳐나온 썰

by 임효진

(2월 1일에 쓰고 뒤늦게 발행하는 글)


미술 작품 감상을 좋아해서 종종 전시회에 간다. 오늘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퓰리처 사진전. 오래 전 열렸을 때 한번 가보긴 했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새로운 사진도 많겠지. 그냥 딱 이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전시는 동선을 따라 1940년대부터 순차적으로 수상작을 보여준다.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차별과 억압과 학살과 전쟁의 기록을 거쳐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넘어갈 때쯤, 나는 결국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사진에 시선이 닿지 않게 바닥을 보며,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게 보이지 않도록 마스크를 거의 눈까지 덮다시피 하면서. 아무래도 우울증 환자에게 이런 전시 적합하지 않았던 양이다.


이번에도 내 머리와 마음은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근현대사의 장면 장면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사진들이 충분히 안타깝고 슬프고 분노스럽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눈물이 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감정에 반응해서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다. 누가 보면 진 속 인물들과 말 못할 관계라도 있는 줄 알았을 듯. 스스로 미쳤나 싶어서 혼란스러운데다가,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싶어서 더 혼란스럽다.


한발 물러서서 잠깐 심호흡을 하려고 중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소용없더라. 거기에는 또 다른 끔찍한 사진이 걸려 있으니까. 돌아 앉아도 마찬가지, 사방 어디에도 눈 둘 곳이 없었다. 이러다가 공황 증상까지 오는 거 아닐까. 결국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아졌지만 다시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전시 후반부는 포기한 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병을 앓기 시작한 후로는 뉴스를 끊었다. 영화도 좋아했지만, 무슨무슨 상을 받았다고 하면 보지 않았다. 책이든 영상이든 혹은 인터넷 댓글이든, 스트레스가 될 만한 내용이면 무조건 피했다. 뭣 같은 세상 따위 보고 싶지가 않아서 그랬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면, 게다가 현실적으로 딱히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인간에게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안 그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 살아 있네, 젠장' 이라고 느끼는 사람한테 그런 부정적 감정이 을 리 있나. 그러니까, 진지한 콘텐츠를 기피했던 건 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그랬는데, 요즘은 많이 괜찮아졌으니까, 이젠 뉴스나 시사프로그램도 곧잘 보니까 그만 방심했다. 게다가 익히 알고 있던 사진에 알고 있던 이야기니까 괜찮을 줄 알았지.


그래 뭐, 처음엔 괜찮았다. 전쟁이라는 게 원래 끔찍하지. 포로를 아무렇지 않게 총살하고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야. 인종과 종교 갈등도 마찬가지. 누가 누구를 나무에 매달든, 누가 누구를 불에 태우든, 또 그걸 바라보며 웃는 사람이 누구든, 역사에서 비슷한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다는 걸 누가 모르냐고. 본질을 흐리고 여론을 호도하는 막말꾼들도, 그래서 누군가 스스로 목슴을 끊게 만드는 것들도 이미 숱하게 봐왔던 것들이잖아.


근데 괜찮지 않았나보다.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고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인간들을 좋아하나보다. 그래서 아픈 사람을 보면 나도 아프고, 슬픈 사람을 보면 나도 슬픈가보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놓고서 자꾸 실망하고, 관심없다고 해놓고서 자꾸 염려한다.


짜증나. 이런 해롭고 미래가 없는 존재들한테 감정을 소모한다는 거. 어차피 망할 족속들, 그냥 다같이 빨리 망해버리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아예 감정 없는 인간이 돼서 쓸데없이 힘들 필요가 없어지거나.


밖으로 나와 한참 바람을 쐰 후 결심했다. 어느 쪽이 먼저든, 아직 이런 시사적인 콘텐츠는 보지 말자. 그냥 행복한 백치로 는 게 나한테는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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