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 서평단 이벤트 진행 《영국, 느리게 걷다》
나의 나지막한 대답에 아내는 이불을 끌어다 얼굴까지 감쌌다. 이미 작정한 일에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다. 모로 누운 아내는 자신이 뱉어내는 한숨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사직서를 냈다는 나의 황망한 고백에 며칠 동안 우리 부부 사이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내 나이 열일곱이던 1987년, 기숙사에서 처음 맞은 타향에서의 아침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해 겨울 경기도 안산에는 전례 없던 폭설이 내려서 난리였다. 그 눈밭을 걸어서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공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열심히 돈 벌어서 고향 시내 한가운데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원 없이 들으며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레코드 가게를 여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게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내 또래보다 좀 일찍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다가 상장회사에 들어가그 혹독한 IMF 한파를 견디며 결혼도 하고, 대학 전공과는 관련 없는 금융기관에서 일하기까지 했다.
눈 주위에 가림막을 하고 기수를 위해, 몇 푼 베팅한 구경꾼들을 위해 트랙을 도는 경주마처럼 그렇게 세월은 나를 40대로 실어 날랐다. 겉으로 웃으며 남에게 수백억씩 대출해 주면서 혹여나 사고는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마음 졸이는 ‘우리 시대 쫄보’로 살았다.
생각해 보니 남에게 ‘난 적어도 굶지 않고 밥 먹고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영혼까지 탈탈 털리며 매일 유리벽에 갇혀 산 지 30년이 되어 가던 차에 나는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했던가. 등산을 좋아하던 직장 동료가 작아서 못 쓴다며 내게 준 등산모자 하나 때문에 등산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들로 산으로 아웃도어 활동을 하니 건강도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해소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진을 찍으며 나의 이야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가입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처음에는 나의 이야기를 끼적이는 수준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다니는 곳도 많아지고 보는 것도 많아지면서 여행전문가가 다 된 것처럼 이곳저곳의 여행을 기획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여행은 늘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을 주는 취미였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돌로미티(Dolomiti)’라는 알프스 지역이 있다. ‘사진에 영혼을 빼앗긴다’는 말처럼 돌로미티를 표현한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도 푸에즈 오들러 산군 아래에 있는 산타막달래나 마을의 작은 교회 사진을 보고는 실제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 여행을 계획했다.
디데이를 정하고 6개월 동안 트레킹(Trekking)과 백팩킹(Bagpaking) 그리고 관광을 겸한 자동차여행 프로그램인 ‘돌로미티 원정대’를 기획했다.
모집 대상은 나 같은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여행 기간은 최대 10일을 넘지 않아야 했다. 곧바로 내가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 블로그, 페이스북에 원정대 모집공지를 올렸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첫해에는 4명, 그다음 해에는 14명의 원정대를 꾸려 사고 없이 모두 성공적인 여행을 마쳤다.
천국을 닮은 좋은 여행지를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나도 함께 여행할 수 있다니!
그렇게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퇴직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인 ‘사진작가’와 ‘여행작가’의 꿈을 키웠다. 회사 업무 이외의 시간은 더 좋은 여행을 기획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연습을 실천으로 옮겨갔다.
그러던 중 한번은 사진에 대한 열망으로 지름신이 강림해 비싼 광각렌즈를 샀다가 포장도 못 뜯고 아내에게 들킨 적이 있다. 하지만 며칠 뒤 500달러의 돈을 내고 외국 회사에서 내 사진을 사겠다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나는 CNN 온라인 판에 실린 내 사진을 아내와 지인들에게 보여주며 “그래, 사진은 꼭 필요한 사람이 사는 거야. 내 사진이 CNN에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하고 으스댔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나를 믿게 되었다.
나는 남들에 비해 좋은 장비도, 사진 전공 관련 학과도 나오지 않은 정말 열정 많은 순수 아마추어 사진가였다. 내가 정성스럽게 찍은 사진을 부정기적으로 응모하여 생기는 부수입이 가끔씩 시기적절할 때 가계재정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나의 팬으로부터 비용을 후원받아 개인전을 열며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퇴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헤진 반팔티를 바꿀 요량으로 아웃도어 브랜드 이름을 찾아보다 얻어걸린 ‘내셔널트러스트’라는 검색어와 사진 몇 장에서 시작되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멋진 풍경과 오래된 건축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관리되지 못한 채 버려져 있는 것만 같은 씁쓸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것들을 개인이 어떻게 보호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120년이라는 전통을 가진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라는 단체를 발견하게 되고, 우리나라에도 이미 내셔널트러스트 관련 단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귀신에 홀린 듯 내셔널트러스트를 경험하기 위해 본고장인 영국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직접 보고 싶어 떠난 영국에서의 에피소드와 그 여정, 차마 내 눈에만 넣기에는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아무쪼록 이 책이 관리받지 못하고 방치된 우리의 문화와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는 조그만 계기가 되길 바라며, 본고장인 영국 내셔널트러스트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