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 보내오는 많은 투고 원고 중에는, 특히 여행서 투고 원고 중에는 신기할 정도로 한 목소리로 겹쳐지는 도입부 내용이 있다.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떠났다는 것인데, 갑자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에 나서고, 순례길에 나서는 용감한 사람들이 진짜 이렇게 많은 거냐며 원고 검토를 하다 말고 동료들과 희한해하곤 했다.
그러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 속으로 몇 번 빠져들다 보니 자연스레 수긍한 것이 있다. 그들의 원고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 이 사람들은 제 마음이 있을 곳을 정한 거구나.’ 다니던 직장을, 학교를 그리고 집을 떠나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아니라 용기 내어 익숙한 터전에서 미지의 어느 곳으로 제 마음을 옮긴 사람들의 ‘시작’이 담긴 이야기라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이별(離別), 이직(離職), 이혼(離婚), 이군(離群), 포기(抛棄), 단념(斷念), 체념(諦念)….
떠나고 갈라지고 떼어놓고 끊어내는 일들에는 그간의 것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함께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변화하고 무너지는 것이 분명 있더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은 아니다. 때로 그것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착각하는 것은 공들인 관계나 다져온 생활의 기반처럼 나를 구성하는 요소로 나를 정체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끊어내거나 무너뜨리는 것을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라 혼동한다.
하지만 실은 무너지는 건 없다. 지나고 와서 보니 그 일은 그저 내 마음이 새로 있을 곳을 옮긴 일이다. 연인과 헤어지고, 일하던 직장을 떠나고, 오랜 친구와 갈라지고, 내 지난 세월을 끊어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내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결정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라고 착각하는 것을 무너뜨리지 않고 지키려 그 안에서 산다. 많은 날을 새장 앞에서 서성이다가도 내 한 부분이라 생각했던 그 익숙한 새장을 떠나 다른 곳에도 서 볼 용기가 간절할 때가 있다. 놓아야 할 것을 놓고, 떠나야 할 곳으로 떠날 수 있도록 내 마음이 있을 곳을 찾아 나서는 용기 말이다. 마음이란 내가 가진 것 중 ‘나’를 가장 많이 쌓아 놓은 굳건한 곳이라서 그걸 뚝, 떼어내 낯선 곳으로 옮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살면서 우리는 몇 번이나 용기를 내야 할까, 혹은 낼 수 있을까.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와 말하자니 더 쑥스럽게 됐지만, 내 전작의 첫 문장이다. 어쩌면 하나같이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떠나냐고, 진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러냐고 동료들과 희한해했던 내가 쓴 첫 문장이라니…. 이제껏 의식하지 못했는데 최근 다시 책장을 펼쳤다가 새삼 발견하고 혼자 무안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당시 내 용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무안하지만은 않다. 새롭게 마음이 자리 잡은 곳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