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실생활자 김편집 Sep 23. 2015

#09 우산

ⓒkimeungyoung



"아아~ 쓰트뤠쓰!!!"


난생처음 떠난 외국 여행지인 프라하의 한 거리에서 더 참지 못하고 외쳤다. 10월 초의 프라하 날씨는 그야말로 오락가락이었다. 비가 뿌리나 싶어 허둥지둥 우산을 꺼내 펴려는 순간 금세 그쳤고, 그쳤나 싶어 우산을 접을라치면 다시 후두둑. 우산을 펴는 동안 비가 그쳤고, 우산을 접는 동안 비가 다시 내렸다. 처음 몇 번은 황당하면서도 날씨 참 희한하네 하며 말았는데 같은 상황이 몇 번 되풀이되며 신경을 긁자 나도 모르게 신경질이 뻗쳐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일주일 있는 동안 가을 날씨다운 청명한 하늘은 고작 하루정도? 내내 회색빛 하늘이거나 비가 오거나 혹은 해가 떠 있어도 여우비 오는 그런 날씨였다. 개인적으론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해서 회색빛 하늘도 좋고, 여행 내내 비가 왔어도 괜찮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렸다 말았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정말이지 너무 귀찮고 성가셨다. 우산을 꺼냈다 넣었다, 폈다 접었다... 맙소사!


"비가 자주 오는 흐린 날씨 때문에 유럽인들이 우울한 기질이 많다고? 그게 아냐! 단순히 날씨가 흐려서가 아니라고. 이 성가심이 주는 짜증, 이 시시때때로 경험하는 예측불가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거라고. 진짜 우울하다, 우울해!"


한참 투덜대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비를 맞는 것.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정도가 아니면 그냥 좀 맞고 다니는 게 차라리 나았다. 영화나 외국 드라마에서 보면 사람들이 여사로 비를 맞고 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그럴 만도 하다는 문화적 이해를 몸으로 체득했다고 할까. 너무 자기 본위의 결론인가? 지금 생각하니 혹시 나는 귀찮음 부적응자?


anyway_

우산은 서양보다 동양에서 먼저 사용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건 중국이나 미얀마의 고대 기록에 따르면 우산은 황제나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진 것 같은데, 유럽에서는 사정이 좀 달랐던 것 같다.


1750년 경 영국의 조나스 한웨이라는 사업가에 의해 지금의 박쥐 날개를 본뜬 모양으로 만들어져 처음 전해졌을 무렵에는 우산을 쓰는 행위가 나약함의 상징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여성들만의 장신구라는 선입견과 더불어 특히 남자가 우산을 사용하면 조롱을 받을 정도로 말이다.  


참, 희한하다. 그렇게 자주 비가 뿌리는 변덕스러운 날씨인 지역에서 꼭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이 하찮게 여겨졌다니. 여하튼 근대 이전에는 유럽인들이 그냥 비를 맞거나 마차를 불렀다고 한다. 조나스 한웨이가 처음 우산을 만들었던 무렵에도 사람들은 우산을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마부들은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우산 사용을 반대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조나스 한웨이는  '나약하고 괴상한 남자'로 조롱을 받으면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30년 동안 항상 우산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점차 우산의 필요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차츰 변화했고 19세기가 되자 변덕스러운 날씨에 맞춰 우산이  일반화되었다나 어쨌다나. 그 인식의 변화에는 마차를 부르는 비용보다 우산을 사용하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도 한몫했다고.


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에는 등장과 동시에 환호를 받았을 실용품 같은데 대중화되기까지 그런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갸우뚱할 일이다. 한때 영국신사라고 하면 중절모와 함께 검은 장대우산의 이미지가 자동으로 떠오르고, 신사의 대표적인 액세서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는데. 아니, 우산도 액세서리로 쳐준다면 나도 꽤 신경 쓰는 액세서리 중 하나였다.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의 액세서리에는 통 관심이 없는데 우산은 좀 멋지고 좋은 걸로 가지고 싶었다. 옷차림은 평범하다 못해 (엄마 표현에 의하면) 거지처럼 입고 다녀도, 옷 디자인으로는 절대 안 입었을 아기자기한 무늬의 디자인이나 컬러 배색이 멋져 보이는 걸로 욕심냈다.


진짜 좋아하는 친구에게 멋진 우산을 선물하는 것도 좋았고 선물 받는 것도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받으면 배로 기쁘니까. 엄청 마음에 드는 우산이 있으면 특별한 날도 아닌데도 친구에게 그 우산을 사 달라고 하기도 했으니 과연 친구에게도 기쁨인지는 모르겠지만. 하핫.


어쨌건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날, 좋아하는 우산을 펼치며, 좋아하는 친구를 자동으로 떠올리는 거니까 서로 기분 좋을 일이라고, 기회를 주는 거라고 우기곤 했다. 실제로 추적추적 비 오는 날씨 좋은 날, 우산을 펼치면 절로 그 우산을 준 친구가 생각나고 그럼 전화를 하게 된다. 뭐 하느냐고, 쓸데없이 으하하하 웃으며. 이야기가 과거형인 것은 어느 때부터인가 자꾸 우산을 잃어버리게 되어서다. 좀체 잃어버리지 않았었는데.


운전을 할 때는 항상 차에 두니 잃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었을뿐더러 언제 비가 오더라도 차에서 꺼내 쓰고 넣어두면 되었는데, 생활 환경이 바뀌며 운전을 못하게 된 이후로는 가방에 넣고 다니니 우산살이 잘 부러져 고장도 잦고, 갑자기 내리는 비에 급하게 우산을 사는 일도 잦았다. 좋아하는 친구가 준, 좋아라 하는 우산이 고장 나는 것도, 잃어버리는 것도 너무 속상해서 이젠 친구에게 선물해달라고 하지도 않고 우산 구경하러 사이트를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우산을 쌓아두고 있는 이 아이러니.






"쯧쯧, 남자가 우산이라니..."

"저 사람 좀 봐. 어디 많이 안 좋은 가봐."

"거참, 저 괴상한 사람이구만."


우산을 쓴 조나스 한웨이가 수근수근 사람들의 조롱을 헤치며 빗속을 걸어갑니다.


JONAS HANWAY AND HIS UMBRELLA(1871)



매거진의 이전글 #08 오카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