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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Jul 11. 2020

서른이 넘으면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지만

어른의 세계에서 허덕이는 삶의 비애

 *여행과는 상관없는 번외 편 이야기입니다.


 어려서 성인이 된다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다. 매년 차곡차곡 한 살씩 나이를 채우면 그대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신분의 단계가 바뀌어 있었다. 그것이 성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깊이 따져본 적은 별로 없었다. 하루아침에 신분 세탁이 되어 어벙벙한 새내기 시절을 겪을 때마다 학교에서는 은근히 새 신분에 대한 책임감을 당부했고 그것으로 나이 먹고 있다는 걸 자각할 뿐. 가령 중학교 1학년이 시작되는 날에 담임 선생님은 오늘부터는 어엿한 중학생이니 초등학생 때의 행동거지는 용납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막 고등학생 교복을 입었을 때는 철없는 중학생과는 철저히 분리시켜 고등학생들만의 세상을 보여줬다. 여느 때와 똑같이 새해를 맞이했을 뿐인데, 3년마다 뜻하지 않게 신분이 바뀌면서 당최 그 경계가 무엇인 지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스무 살을 맞이했을 때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인생이 뒤바뀌어 있었다. 대학교 생활은 인생 전반부와 비할 게 아니었다. 12년 동안 익혀 몸에 밴 학교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른 등교 시간을 어긴다고 해서 벌을 준다거나 나의 과오를 부모님에게 득달같이 전화를 해서 부끄러움을 남기는 그런 세계가 아니었다. 교내에서 대낮에 술을 마시든 춤을 추든 잠을 자든 연애를 하든 공부를 하든 모든 게 캠퍼스의 낭만으로 포장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나에게  20대 초반은 어른의 세계의 단맛과 즐거움만 가득한 체험판 같았다. 

 대학이라는 타이틀이 뭐가 중요하냐 싶다가도,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간이 남아돌고 자유와 책임의 무게를 알게 된 나는 서서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난생처음 하게 됐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학교로 징검다리를 건너온 나에게 처음으로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계기. 마침내 졸업이 다가온 것이다. 미래 거창한 계획이나 삶의 목표가 딱히 없었다. 당연히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주변에서는 조바심에 취업 박람회니 취업 강의니 쫓아다니는 친구들이 늘었고, 나는 여전히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나이만 먹었다. 스물네 살 내 앞에는 삶이라는 커다란 백지 한 장이 놓여 있었고, 마땅히 써서 제출할 만한 답이 없어 펜만 부여잡고 있는 게 좀 피로한 나날이었다. 아마 그때 죽음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생각해본 거 같은데, 삶을 비관하거나 취업난에 고통을 겪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남들처럼 무엇이라도 써서 내고 싶지 않은 심보가 있었고, 남들을 따라 타협하는 삶도 내키지 않았다. 무기력이 지속되자 만사가 귀찮아졌고, 어떤 세계에도 편입되지 않고 그저 사라지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그러나 잘못한 선택조차 실천할 만한 기력이 없었고 용기도 부족했다. 또 나쁜 마음을 먹을 틈도 없이 우리 가족은 내게 안부 전화를 너무 자주 했다.

  취업 걱정이 제일 없던 내가 가장 빠르게 취업을 한 건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원했던 매체는 아니었지만, 매거진에서 일을 배웠고 사회생활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월급 통장에 매달 일정한 급여가 들어오고, 회사의 소속 일원이 되어 일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안정적인 어른의 길로 인도했다. 적당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내가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학생 때와는 다른 삶으로 자연스럽게 진입한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돈과 끈끈한 연대를 맺는 것이고, 그 연대가 깊을수록 삶에 거추장스러운 게 많아진다. 어느 인생이나 성공이나 명예 같은 게 따라붙으면 좋으련만, 어째 그보단 빚이나 카드값의 무게에 짓눌린 삶이 더 흔하다. 나의 첫 어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대 중반 즈음 매거진 회사에서 만난 동기는 언젠가 내게 서른이 되어도 매거진 기자를 하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막내 시절 우리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고된 마감 생활을 견뎌야 하는 매거진 업무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는 시간에 수북이 쌓인 업무를 하나 더 쳐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나는 서른 살에 꼭 폭스바겐 비틀을 탈 거야. 그러려면 이 일은 때려치워야 할 것 같아."


 그녀가 목표로 둔 자동차가 미니였는지 비틀이었는 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아마도 그 당시 그녀의 눈에 가장 멋지고 귀엽고 가지지 못했던 차였으리라), 책상 너머로 넋두리하는 그녀의 대단한 야망과 포부가 담긴 목소리는 또렷하게 생각난다. 사업가 기질을 보였던 친구는 그 후에 계획대로 서른에 외제차를 끌기 위한 준비 과정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잡지사를 때려치우고, 몇 번의 이직을 하더니 버젓이 지하상가와 동네 번화가를 돌며 옷가게를 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으로 편입된 그녀의 소식을 종종 들었지만, 내가 유학을 가고 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거리에서 미니나 비틀을 타는 젊은 여자를 볼 때면 그 친구가 계획한 성공의 여부가 괜히 궁금하곤 한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면 당연히 돈도 따라온다고 믿어온 나는 일에 너무 큰 애착을 쏟은 탓에 일찍 번아웃을 겪었다. 그리고 뒤늦게 이렇게 일만 해도, 돈은 제대로 벌지 못한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애초에 그 순수한 믿음이 얼마나 무용한 것이었는 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과연 20대 중반 일에만 몰두하지 않고,  친구를 따라 외제차 카탈로그를 보며 새로운 꿈을 꿨더라면 뭐가 좀 달라졌을까? 문득 지금보다 어린 어느 시점에서 막연히 나의 서른다섯을 그렸을 때, 통장 잔고를 걱정하는 초라한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을까? 분명 어려서 막연히 떠올린 서른다섯의 나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했으리라. 돈과 명예, 부는 디폴트 값으로 지닌 실장님 캐릭터를 상상하며 말이다. 돌이켜 보면 진정한 '어른'이 되는 일도 이토록 버거운데, 거기에 멋지고 싶다는 막연한 허상까지 씌운 당돌함에 기가 차지만.

 

공식적으로 세 번째 퇴사를 하고, 다시 시간이 남아돌아 자유와 책임의 무게를 절절히 느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나는 평균화된 어른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서서히 일과 돈, 명예, 성공, 어른 같은 추상적인 단어에 침잠한다. 나름 소신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던 믿음이 과연 내 나이에 마땅한 것을 채워주었는가에 대해서 다시금 자문한다. 서른 중반 이미 일찍 성공을 거둔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걸 보며 그들의 삶에 빗대어 나의 지난날을 들춰본다. 나는 서른에 외제차를 타고 싶은 꿈을 가져본 적 없기에 그 꿈을 애써 이루려 하지 않았고, 떼 돈을 벌고 싶을 만큼 재물에 집착하지 않은 탓에 돈(이 많아) 걱정할 일도 없게 됐다. 그렇게 나의 소신대로 지금의 삶을 이룬 셈이다. 정신 승리라고 비웃을 지 모르나 나의 어리석은 침잠의 결론은 언제나 삶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

 

 중고등학교처럼 3년에 한 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스무 살 이후에는 자각 없이 나이만 늘려간 셈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크지 못한 내가 물질적 성공이 전부인 듯 말하는 어른의 세계에서 뒤처지고, 고집스러운 소신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함으로 비난받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나이를 먹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른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멋진' 어른을 만나는 게 성공한 어른을 찾는 것보다 힘든 세상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나는 과연 또 어떤 어른의 삶을 살고 있을까? 나이를 늘려가는 건 여느 해처럼 단순하고 자명한 일이지만, 이제 더 나은 어른이 될 거라고는 결코 장담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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