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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Aug 27. 2020

백수 생활 종료 일지

누구나 한번쯤 백수가 된다

*여행과는 관련 없는 번외편 글입니다.


갓수의 생활이 정말로 며칠 안 남았다.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아내, 주부의 삶을 지낸 게 어느덧 8개월. 여전히 누군가의 아내, 출근하지 않는 주부라는 호칭은 겸연쩍지만 회사라는 집단에서 벗어나 집이라는 온실 속에만 머물렀던, 내 생애 가장 평온한 나날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알람 소리 없이 잠을 깨고, 식물을 돌보고, 느긋하게 아침을 만들고, 한없이 낮잠을 자거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걷고,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가 고민 없이 잠드는 일상. 평일 오후면 나는 이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일을 하는 동안에는 결코 누려보지 못한 느긋한 일상에 대해 깊은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어느 날은 문득 남들이 답답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 밥벌이를 하고 있을 때,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 식물만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무척 초라해 보일 때도 있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개미 유전자가 느닷없이 갓수가 되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인 것이다. 몸은 한없이 편한데, 마음은 한없이 불안한 것.


불안 그리고 시간.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긴 겨울에 시작해 무더운 여름까지 집에 머무는 동안 나를 지독하게 괴롭힌 건 불안과 시간을 스스로 다스리는 일이었다. 평탄한 나날 속에서도 불현듯 '남들' 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휩싸일 때면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그건 내 안에서 자생한 위기의식이었고, 내 사회적 쓸모가 더 이상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아무 생산 활동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죄의식과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부채감이었다. 그건 여러 번의 자발적 퇴사 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흔한 것이지만, 어떤 날은 신경이 곤두서서 날카롭게 굴기도 했다. 주변에선 그동안 열심히 일'만' 했으니 온전한 쉼이 필요한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위로했고, 누군가는 그럴 바엔 얼른 일을 다시 시작하라고 타박하기도 했다. 사실 그 어떤 것도 나에겐 내키지 않는 조언이었다. 되려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된 휴식의 의미조차 모르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또 다른 자괴감을 낳았다.


두 번째 자발적 퇴사를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은 마음의 요동을 잠재우기 위한 조용한 발악이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찾아왔고, 완성한 글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혹자는 이곳에 글을 쓰는 게 돈이 되냐며 은근히 비아냥됐지만 나에게 글을 쓰는 시간은 더 이상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기계를 스스로 돌리는 일이었고, 그러므로써 내 삶이 아직 건재하다는 표식을 남기는 일이었던 것이다. 덧붙여 지난 나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Thinking blanks

Creating something.


과연 나는 철저히 비웠을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겼을까?

여전히 회사라는 울타리는 여러 가지 의미로 우울감을 선사하지만, 자발적으로 다시 회사원이 되기로 한 이 시점에서 불안과 맞서 있던 백수 생활을 돌이켜 보니 어쩐지 지난 시간이 더욱 처량해진다. 마땅히 쉬어야 하는 시간에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자발적 쉼이 사라지고 나면 또다시 사회적 우울감에 젖어들게 뻔한 지난한 악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회사를 택한 건 다시 한번 넘어진 자리로 되돌아가 내 안의 고질적인 악습의 고리를 끊어 보기 위해서다.


회사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에게 존재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찾고 싶어 하는 그 답은 지금 현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백수 종료 일지를 쓰는 지금 나는 지나간 일의 후회를 통해 새로운 잘못을 시작하는 대신 현재 나의 선택을 옳게 만들며 살아가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긴다.


일을 하지 않는 동안 사실 그 누구도 뭐라 한 적 없는데도 스스로 초라함에 몸부림쳤던 것은 내 안의 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을 거둔 '남들의 삶' 속에 내 삶의 정답도 존재하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집에서 식물이나 키우는 나 자신을 짓밟은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지금에서야 지난날을 자위하는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럽지만, 언제라도 백수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분명 백수 생활 (잠재적) 종료 시점에 깨달은 것만으로도 큰 배움인 셈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지난날의 나처럼 자신의 삶을 한없이 초라하게 내려다보고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확신을 주길 바란다. 월급을 받기 위해 기술을 키우는 것만큼 식물을 키우고, 집안일과 육아에 힘쓰는 것이 얼마나 삶에 중요한 역할인 지,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충만한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 지.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말을 빌려 좀 더 멋진 말을 전하자면,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내가 모르는 그리고 자신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속 중인 것이 얼마든지 잠복되어 있다는 걸 아는지.

현재를 바라보고 매 순간 집중하는 삶의 태도를 길들이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8개월 간의 은혜받은 갓수의 삶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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