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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Feb 07. 2024

우리 회사의 자긍심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더 이상 우리를 '영상업체'로 찾지 마세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조용히 사업을 시작하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알렸더니, 주변에서 종종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에디터, 영상 작가, 인하우스 마케팅, 온라인 플랫폼 콘텐츠 론칭까지. 콘텐츠 제작 경력을 중심으로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며 두루 커리어를 이어오다가 돌연 사업을 한다고 하니,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뭐 대단한 브랜드를 탄생킬 것 같은 기대감을 품은 듯했다. 뭔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에둘러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약간 주눅이 된 말투로 '영상 만들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며 그들의 희망과 기대를 한 순간에 날려버리곤 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또 영상이야?(콘텐츠 기획자들이 흔히들 퇴직 후, 프리랜서로 독립해 나가는 예측 가능한 커리어패스구나)' 이거나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 브랜딩 하고 싶다'라는 주제로 퇴사 노래를 불렀던 내가 브랜드가 아닌 영상업을 한다는 것이 꽤나 의아하다는 반응, 그리고 반갑게 손을 잡으며 '나도 영상 필요한데, 연락하면 잘해주는 거지?'라는 반응 등이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왜인지 모르게 업에 대한 자부심 사라진 듯한 내 목소리였다. 10년 넘게 남의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토록 고대했던 내 회사를 직접 만들어가고 있는데, 왜 회사를 다닐 때보다 나의 업을 이야기할 때 마치 잘못된 일을 저지른 것처럼 주눅이 드는 것일까?


"업의 본질을 설정하고, 그걸 기준으로 일하세요. 내 업의 본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하는 일과 가능성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그래야 내 일의 범위를 점점 확장해 갈 수 있습니다"
-Publy 크리에이터 리더십 박웅현 인터뷰 중  


1년 간 사업을 이어오는 동안 내가 가장 적응하지 못했던 것은 자기객관화된 포지셔닝이었다. 나는 더 이상 어딜 가나 기세등등한 매체 기자도, 마케팅 예산을 쥐고 있는 인하우스도 아니고, 일이 성사가 되든 안되든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갈 수 있는 직장인도 아니었다. 계약서상 ‘갑’으로 표기된 분들의 애매모호한 니즈를 간파해 설득하고, 그들의 최종 결정과 예산 협의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단순히 사회적, 경제적 측면의 업으로 보자면, 우리는 기업과 브랜드가 필요한 영상의 크리에이티브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이고, 갑과 을은 그에 대한 물질적 가치를 서로 교환한다. 오랜 기자 생활로 나는 이상적인 협업이란 서로에 대한 충분한 존중과 존경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를 그저 ‘영상업체’ ‘영상제작팀’이라는 고작 다섯 손가락에 끝나버리는 말로 정의해 버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을'의 삶에, 그들이 부르는 내 업에 거북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업을, 그리고 우리 회사 <뉴웨이브필름>을 단 한 번도 영상 프로덕션(또는 영상업체)으로 규정할 생각이 없었다. 오랜 기간 연출 감독으로서 커리어를 쌓다가 독립해 개인 프로덕션을 여는, 일반적인 커리어 루트로 우리 회사를 여기는 사람들에게 감독님은 종종 ‘우리에겐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자가 있다. 프로덕션이라고 부르지 마라 달라, 우리는 영상 말고도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라고 나를 치켜세우곤 한다. 그때마다 옆에 있는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지만, 그건 나의 능력치가 곧 뉴웨이브필름이라는 ‘브랜드’ 방향에 대한 차별성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전문적인 기획과 연출로 융합되는 시너지를 하나의 브랜드 가치로 키우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의 업을 나 스스로는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우리에게 의뢰를 하는 대다수의 클라이언트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렇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불분명하지만 명확한 영상 콘텐츠 니즈를 가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콘텐츠 제작과 기획, 브랜딩에 대한 조언을 가감 없이 덧붙인다. 마치 뒤죽박죽 섞인 옷장 속을 파헤쳐 주인도 몰랐던 새로운 보물(브랜드 가치)을 발견해 주고, 어울리는 옷(콘텐츠 커뮤니케이션)을 추천해 주고, 세상에 자랑할 완벽한 드레스업이 될 수 있게 꾸며준다. 즉, 브랜드를 깊숙이 공부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 미팅을 하기 직전까지도 몰랐던 자신들의 니즈를 기획자 먼저 알아준다면? 어떤 클라이언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콘텐츠 에디터로, 마케팅 실무자로, 회사의 각종 행정 절차와 예산 그리고 대표의 최종 컨펌을 이끌어내야 하는 담당 실무진으로, 10년 넘게 해온 일이라서 누구보다 공감하고 방법을 찾는 나만의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콘텐츠 오거나이저(Contents Organizer)로 빛을 보는 셈이다.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적절한 포맷(영상이든 지면이든 포맷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을 제안하고, 예산에 맞는 제작과 플랜을 정하고 실행한다.


지독하게 일을 사랑했던, 그래서 조직의 안정적인 월급보다도 오랫동안 즐겁게 일을 하고 싶어 직접 회사를 만들게 된 우리에겐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성실함과 진정성이 내면 깊숙하게 탑재돼 있다. 이 두 단어가 우리 회사를 어필하는 마케팅에서는 아무 임팩트 없이('바보 같은 자식!' 이 더 이상 욕으로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낡아빠진 단어로 전달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달리 우리가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품는 열정과 시간, 공과 노력을 표현할 진심의 말이 딱히 없다. 작년에 <뉴웨이브필름>의 제작으로 세상에 나온 10개의 프로젝트에서 확신을 갖게 된 것이 있다면, 우리가 가진 이 성실함의 유전자는 크든 작든 어떤 프로젝트에서도 스스로 부끄러운 결과물을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점은 우리와 함께 일해본 클라이언트들이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덧붙여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는 그들에게나 또 우리와 만나게 될 또 다른 인연들에게 더 이상 <뉴웨이브필름>이 '영상업체'로 정의되지 않길.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는 스스로가 먼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우리의 가능성에 대하여 더 크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을 하냐고요?

우리는 당신도 몰랐던 당신을 스토리텔링합니다. 당신이 만들고 싶었던 '바로 그것'을 읽어내 주는 사람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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