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일기

여덟, 다섯

by 편집실의 편지함

한숨 크게 끌어 마시면 여름을 실감한다.

어학당 문을 열고 나설 때면

아스팔트 위로 내리쬐는 뙤약볕이

벌겋기 그지없어 겁이 날 정도다.


“이곳에 뼈를 묻으리”라는

어제의 변덕을 뒤로 한 채

나는 또 한 번

오늘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마 이번 주부터 새로운 변화와

기존의 것들이 융화되는 작업이 시작될 것 같다.


내 체력이 받쳐주면 좋겠다.

어학당에서의 시간은 짧고 애정의 골은 깊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작은 은신처였다.


금전적 가치를 떠나서

이곳에서 나 자신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아버지를 닮은 것들까지 전부 미워했다.


어쩌면 일찌감치 기능을 배웠더라면,

지금보다 형편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가 간 길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아서

그 갓길을 돌아가며 살아왔다.


사람은 타고난 천성이 있고,

살아가면서 생기는 기질이 있는데,

부모의 유전 때문일 수도 있고,

살아온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갈림길에 설 때 했던 자신의 선택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결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것을 만족하기엔

나는 태어나, 욕심이 너무 많았다.

어쩌면 그 만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릇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는 스물다섯의 여름에 들어서서

겨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망가져도 보고, 가진 것의 배로 잃어도 보니

나는 이렇게 작은데, 야망은 끝없이 번져,

‘결국 모든 것을 집어삼켰구나’를 깨달았다.


그 허물을 벗어 던졌을 때야

비로소 나 자신이 보였다.


나는 커피 향이 좋고,

빵을 먹는 것도 만드는 것도 좋다.

혼자서 일하는 시간은 항상 감사하며,

그렇게 번 돈으로 친구를 만나고,

부모님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행복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나는 선하지 않은 사람이다.

겁쟁이에 가끔 속도 좁고 야비하고 이기적이고

도덕성마저, 때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이냐 묻거든,

단지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이다.


2026년 겨울에 공개하는,

2023년 여름에 쓴 일기.


여덟의 이예나에게,

다섯의 이예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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