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창업가 100명에게 듣는다
인터뷰 내내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이라는 표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배두나 주연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도 오래된 기억 속에서 호출된다. 고양이처럼 매력적이고 예술적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래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Q. 본인을 잘 표현하는 세 단어
고양이, 책, 전시 기획
Q. 창업하기 전에 했던 일
2001년 인터넷 서점 웹진 기자로 취직해서 저자 인터뷰, 전시 리뷰, 책 리뷰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기사를 썼어요. 고양이를 좋아했지만 가족 동의는 얻지 못했던 때여서, 키울 수 없으면 사진이라도 간직하자 싶어 고양이를 찍기 시작했어요. 그게 2002년부터니까 18년째 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네요. 2007년부터 해외 고양이 취재도 시작하면서 5권의 고양이 책을 썼어요. 기자로 13년, 편집자로 2년 반 정도 일했고 작가로 15년간 활동했는데 그런 경험이 2017년 야옹서가를 창업하는 데도 도움이 됐습니다.
Q. 현재 사업체, 창업 아이템
직업을 가질 거라면 오래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제가 사랑하는 고양이에 대한 책을 계속 내고 싶어서 2017년 1인 출판사 ‘야옹서가'를 창업했습니다. 현재까지 10권의 책을 출판했네요. 주로 성묘 입양 이야기, 육아육묘 이야기, 다묘 가정의 희로애락 등을 담은 책을 내고 있습니다.
고양이를 위한 창업가로의 변신
Q. 요즘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
저희 집 고양이 ‘하리'와 느긋한 시간을 보낼 때가 제일 행복해요. 그러고 보면 매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Q. 오늘날 당신을 있게 한 당신만의 가치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계속 하자’라는 마음입니다. 제 사례를 들면,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계속 사진을 찍게 되었고, 글과 사진이 쌓이다 보니 다섯 권의 책이 되었죠. 더 다양한 고양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어서 출판사를 창업하게 됐고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하루하루 쌓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Q. 존경하는 사람
동물 전문 사진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이와고 미츠아키가 롤모델이에요. 50년 동안 전 세계 고양이를 찍어 온 원로 작가인데, 작년 2월 22일(일본 고양이의 날)에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했죠. 이 작가의 책 중에 ‘고양이를 찍다-고양이 사진술의 결정판’이란 에세이가 있는데, 고양이를 잘 찍는 법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고양이와 교감하는 마음을 담고 있어서 좋았어요. 이 책은 야옹서가에서 판권을 수입해서 2019년 8월 한국어판으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Q. 야옹서가의 대표작 추천
야옹서가의 첫 책인 ‘히끄네 집’입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2017년 10월 4주 국내 도서 종합 1위를 차지했고 한 달만에 5쇄를 찍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어요. 출간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입니다. 버려진 고양이와 외로웠던 청년이 서로에게 따뜻한 가족이 되어주고,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아요.
출간 기념행사로 히끄 사진전을 기획했는데 호응이 좋았습니다. 고양이 ‘히끄'의 등신대를 직접 만들어서 포토존을 꾸미고, 히끄 발바닥 본을 떠서 발도장도 직접 만들어서 전시했는데 방문객들이 많이 사랑해주셨어요. 반응이 워낙 좋아 서점 순회 전시도 하고 알라딘, 인터넷 교보문고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히끄 굿즈를 제작하기도 했어요.
Q. 창업을 하기 전과 후 개인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
자영업자니까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해서 쓸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회사 다닐 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던 회계 업무도 직접 해야 해서 스트레스가 생겼고, 기획이나 취재뿐 아니라 영업, 마케팅, 재고관리에 이르기까지 책임져야 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만들어보고 싶었던 고양이 책을 직접 출판할 수 있어서 제작자로서 뿌듯합니다.
Q. 본인만의 재충전, 휴식 방법
함께 사는 고양이 ‘하리’와 교감하는 시간이 가장 큰 재충전 시간인 것 같아요.
고양이가 더 행복한 세상을 위해 오늘도 책을 만듭니다
Q.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
고양이 책만 내는 출판사가 있었다면 들어갔을 텐데, 그런 곳이 없어서 직접 창업할 수밖에 없었어요. 창업 전에 기자로 13년, 출판편집자로 2년 반 정도 일했고, 고양이 책 작가로서도 계속 활동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출판업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좋아해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평생직업으로 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창업을 하기 전 가장 두려웠던 것과 극복 방법
숫자에 약해서 회계 업무가 제일 두려웠는데 일단 창업했어요. (웃음) 현재는 회계사무소에 기장을 맡겨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Q. 사업 진행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 혹은 아찔했던 순간과 극복 과정
창업 초창기 원천세 신고를 하는데, 저자 인세가 사업소득인데 갑근세로 잘못 신고해서 정정을 2번이나 했어요. 세무서 담당자분의 조언을 듣고 반기별 납부로 변경하면서 세금신고를 매달 해야 하는 부담을 덜었어요. 현재는 외부 업체에 맡겨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자주 있진 않지만 제작 사고가 나는 경우도 아찔한데요. 한 번은 제본소 실수로 책이 원래 길이보다 3mm 짧게 재단되어 입고된 적이 있어요. 재인쇄하느라 출간이 보름 늦춰지긴 했지만, 평소 신뢰관계가 두터웠던 인쇄소의 중재로 잘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Q. 그동안의 창업 과정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
창업 자체를 후회하는… (웃음) 도전이나 모험 같은 걸 좋아하지 않아서 제가 창업하게 될 줄 몰랐어요. 저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지만, 아직 퇴사하지 않으셨다면 일하고 싶은 분야의 회사가 있는지 먼저 찾아보고 취업하는 걸 권해드려요.
Q. 해당 분야에 필요하거나 중요한 자질 혹은 덕목
자기가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확실한 주제가 있어야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출판 일이 힘든 이유가 비용은 계속 지출되지만 제작비용 회수는 빨리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한 권 내고 개점휴업 상태인 출판사도 많아요. 단순히 꿈만 바라보고 시작할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일을 하면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합니다.
Q. 해당 분야의 트렌드 및 변화, 그에 따른 대응
최근의 출판 트렌드는 ‘~해도 괜찮아'가 대세 같아요. 모두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위로가 되는 책이 필요한 거죠. 고양이 출판 분야에서는 고양이 자체가 SNS 스타인 경우나, 고양이 유튜버들의 사진집이 사랑받는 추세입니다. 야옹서가의 경우 사진에세이를 주로 출판하기 때문에, 저자의 사진을 미리 살펴보기 수월한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저자를 섭외하고 있어요.
Q. 창업 관련 정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안
현재 서울산업진흥원 내 출판지식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는데, 예비 창업자부터 창업 3년 이내까지 입주 가능한 곳이에요. 소정의 마케팅비도 상하반기에 지원되고, 임대료도 인근 사무실과 비교하면 저렴해서 많이 도움이 됩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사이트에 입주 공고가 올라오니 참고하세요. 그 외 K-스타트업, 경기콘텐츠진흥원, 경기문화재단 등에 올라온 다양한 지원 사업 공고를 살펴보고 지원하고 있어요.
고양이를 지켜주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
Q. 내게 있어 성공이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고양이들)을 지켜줄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 제작자로서는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만든 책이 독자들에게도 선택을 많이 받는 것이고요.
Q. 앞으로 하고 싶은 일 혹은 목표
책과 고양이 예술을 함께 즐길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2009년 9월 9일을 '한국 고양이의 날'로 창안하고 매년 고양이 작가들을 섭외해 전시를 열고 있는데, 이 행사를 안정적으로 주최하면서 지역 주민과도 소통할 공간이 필요해서요. 출판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지역에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생명존중교육과 전시를 병행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책 종수가 점점 늘면서 고양이 책방을 여는 것도 고민하고 있어요. 도서관이 될지 책방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전시 공간은 꼭 만들고 싶고요. 책을 직접 써 보길 원하는 분들과 워크숍도 진행해볼 생각이에요.
Q.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로 계속 남기고 싶다면 굳이 창업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잘 모르거나 하고 싶지 않은 업무를 해야 할 때가 더 많기 때문에요. 월급쟁이로 살면서,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만 즐기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어요. 특히 수입이 없을 경우 유지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창업 전에 꼭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