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an of Whisky

힉슨 하우스(Hickson House)

에디터 K의 메디콤뉴스 기고 글

by 에디터 K

시드니 도심, 하버 브리지 아래의 증류소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맞은편에 위치한 록스(The Rocks), 하버 브리지의 거대한 아치 아래에 자리한 힉슨 하우스 증류소(Hickson House Distillery)는 분주한 관광지 한켠에 위치해 있다. 1910년대 지어진 유서 깊은 창고 건물을 개조했다고 하며, 높은 천장과 견고한 벽돌 그리고 곳곳에 드러난 강철 빔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증류소와 바, 레스토랑이 한 공간에 어우러진 이곳은 칵테일 입문자부터 위스키 애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도심 속 증류소다.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 한쪽을 차지한 빛나는 구리 증류기들이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전통적인 단식 증류기(pot still)들이 바로 이 증류소의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다. 증류소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구리 증류기들은 진과 위스키 증류에 사용된다고 한다.


증류 공간을 둘러보면 현대적인 스테인리스 강철 탱크들도 다수 눈에 들어온다. 천장을 훌쩍 넘을 만큼 큰 탱크들은 발효 및 증류액 저장 용도로 쓰이는 설비이며, 다른 한쪽에는 원료인 곡물을 분쇄하는 장비도 보인다. 증류소 직원은 “우리 증류기는 이곳 현장에서 모든 진을 직접 생산해내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는데, 실제로 이곳의 진은 모두 이 시설에서 증류된다.


호주 로컬 보태니컬의 개성과 제품군


진을 증류하는 곳 맞은편 공간에는 여러 가지 향신료와 약재 샘플을 담은 작은 병들이 진열돼 있다. 주니퍼 베리(노간주 열매)를 비롯해 말린 고수 씨앗 등 전통 진의 재료들 사이로, 유칼립투스 등 호주 토착 식물들도 눈에 띄었다. 증류소 직원이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보게 하며 각 재료의 쓰임새를 설명해 주었는데, 호주산 허브가 Hickson House 진에 개성적인 풍미를 부여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힉슨 하우스의 대표 진들은 런던 드라이 진 레시피에 호주 고유의 식물을 가미하여 지역적 색채를 드러내는데, 예를 들어 Australian Dry Gin에는 주니퍼와 고수 씨 외에 호주의 finger lime, aniseed myrtle과 같은 현지 약재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증류소 투어에서는 먼저 Hickson House 진으로 만든 진토닉 한 잔이 제공되었는데, 기본적으로 꽤나 좋은 진에다가 차가운 글라스에 레몬과 허브를 곁들여서 입맛을 가볍게 돋우었다. 그 후 Hickson House의 진을 테이스팅 해 볼 수 있었는데,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Oyster Shell 진이다. 바다에서 영감을 얻은 이 진은 증류 과정에서 해조류와 핑거 라임, 그리고 신선한 굴 껍질을 함께 우려내는 독특한 레시피로 만들어진다. 덕분에 입안에 머금으면 크리미 한 질감과 함께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은근하게 퍼져나간다. 주니퍼와 시트러스의 조화에 미네랄 터치가 더해진 풍미로, 시음 당시 가이드가 “생선회나 신선한 굴에 곁들이기 좋다”고 소개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한편, Hickson House는 다양한 진 외에도 증류주 전반에 걸친 포부를 가지고 있다. 증류 시설 투어 중 직원은 “훗날 위스키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만 이곳의 기후와 공간 제약을 고려하여, 본격적인 위스키 숙성은 시드니 외곽의 별도 창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법적으로 위스키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2년 이상 오크통 숙성을 거쳐야 하므로, Hickson House의 첫 싱글 몰트 위스키가 선보이는 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버 브리지 아래에서 즐긴 한 잔의 진에는 호주 대지에서 자란 허브의 향, 100년 역사를 품은 공간의 기억, 그리고 증류소의 열정이 한 방울 한 방울 녹아 있었다. 그 조용한 감동을 되새기며, 머지않아 이곳에서 완성될 시드니산 위스키의 첫 모금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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