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K의 메디콤뉴스 기고 글
설국(雪國)이라 불리는 일본 니가타현의 겨울. 열차 창밖으로 논과 산자락이 이어진다. 니가타는 예로부터 일본 사케(日本酒)의 대표 산지로 알려져 왔다. 겨울 공기 속에서 니가타시 중심가의 한 양조장 입구에 섰다. 목조 건물 처마 밑에는 갓 빚은 술을 상징하는 스기다마(杉玉, 삼나무 잎으로 만든 공)가 매달려 있고, 입구에는 “今代司”라 적힌 간판이 보인다. 니가타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1767년 창업해 250년 넘게 이어져온 이마요츠카사(今代司) 주조는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오래된 양조장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마요츠카사 양조장 내부에는 나무 발효통과 옛 양조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자체가 ‘이 양조장이 어떤 방식으로 술을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메이지(明治) 중기 이후 이마요츠카사는 니가타 내에서 사케 양조를 지속해온 대표적 전통 양조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쌀 부족, 주류 유통 구조 변화, 생활양식 변화로 일본 전통주 소비가 급감하면서 이마요츠카사도 한때 존재감이 약해졌다.
그 후 2000년대 들어 이마요츠카사는 전략을 크게 바꿨다. 양조 현장 한쪽에 “只今純米仕込”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이는 쌀과 물로만 빚는 순미주(純米酒) 양조를 의미한다. 2006년 이마요츠카사는 생산량을 줄이면서까지 “방향을 다시 잡겠다”는 결정을 했고, 이후 양조 알코올을 첨가하지 않는 전량 순미(純米) 체제로 전환했다. 전후(戰後) 니가타 지역에서는 드문 선택이었다. 효율을 위해 증류 알코올을 섞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던 흐름에서 벗어나, 원료 중심의 ‘순미’로 브랜드 정체성을 다시 세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마요츠카사는 현재 일본에서도 ‘순미주 중심 양조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투어를 따라가며 확인한 것은 생산 방식이었다. 이곳은 대규모 설비로 대량 생산하기보다, 소규모 배치(micro-batch)에 가까운 생산과 관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사케와 위스키는 둘 다 곡물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당화’가 핵심이지만 방식이 다르다. 위스키는 발아한 보리(麥芽)의 효소로 당화를 하고, 사케는 쪄낸 쌀에 누룩곰팡이(황국균 등)를 키워 전분을 분해한다. 출발점부터 쌀과 보리, 곰팡이와 맥아 효소라는 차이가 분명하다.
발효실에는 모로미(醪, 술덧) 탱크가 이어져 있었다. 쌀누룩이 만들어낸 당과 밑술(酒母)에서 증식한 효모가 함께 작동해 술이 만들어진다. 관계자는 이를 병행복발효(並行複醗酵)라고 설명했다. 당화와 알코올 발효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다. 맥주나 위스키는 당화된 워트(wort)를 만든 뒤 발효로 넘어가지만, 사케는 한 탱크 안에서 밥·누룩·효모가 함께 움직이며 공정이 겹쳐 진행된다. 이 방식 덕분에 사케는 발효만으로도 도수 15-20도 전후까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양조주로서는 높은 편인데, 누룩곰팡이와 효모의 ‘역할 분담’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반면 위스키는 발효 단계에서 보통 5-10도 수준의 워시(wash)를 만든 뒤, 증류로 알코올을 농축한다. 그래서 공정 차이를 단순화하면 “사케는 발효에서 끝나고, 위스키는 발효 뒤에 증류와 숙성이 붙는다”로 정리할 수 있다. 이마요츠카사에서 본 제조 공정은 책이나 자료로 읽는 것보다 구조가 더 명확하게 잡히는 경험이었다.
술지게미를 압착해 맑은 술과 부산물을 분리하는 후네(舟) 작업장 한켠에서, 일본 사케 유통의 오래된 관행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후네는 사케 양조에서 발효가 끝난 모로미(醪, 술덧)를 천천히 눌러, 맑은 술과 술지게미를 가르는 전통식 압착 장치다. 오늘날에는 자동 프레스도 쓰이지만, 후네 방식은 산화와 잡미를 최소화하는 저압 압착법으로 고급 사케에 주로 사용된다.
과거 일본 전역에서 술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유통 과정에서 사케에 물을 타서 양을 늘리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다. 지나치게 희석된 술은 ‘금붕어 술’이라 불리기도 했다. “너무 묽어서 금붕어가 그 안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풍자에서 나온 표현이다. 이에 대비해 이마요츠카사는 출하 단계에서 물을 타지 않는 원주(原酒)를 브랜드의 핵심으로 삼아 왔다. 원주는 발효와 압착이 끝난 사케에 물을 더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며, 사케 본래의 농도와 향미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희석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이 양조장의 정체성 중 하나였고, 이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제품이 바로 니시키고이(錦鯉)다.
니시키고이(錦鯉)는 비단잉어를 뜻한다. 양조장 측 설명에 따르면, ‘묽은 술(금붕어 술)’에 대한 풍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힘 있고 생동감 있는 잉어를 브랜드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실제 니시키고이는 잉어를 연상시키는 도자기 병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니가타를 찾는 관광객과 선물용 시장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이 제품은 원주(原酒) 형태로 병입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품 소개 문구에서도 ‘희석하지 않은 힘’이라는 메시지가 반복된다. 니시키고이는 이마요츠카사가 선택한 ‘순미 체제’와 ‘원주 중심’ 전략을 상징하는 대표 상품으로 기능한다.
직접 맛을 보면, 도수 17도 전후의 준마이다이긴죠(純米大吟釀) 원주 특성이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난다. 준마이다이긴조는 쌀과 물, 누룩만으로 빚은 순미주 가운데, 쌀을 50% 이상 깎아 중심부만 사용한 고급 등급을 뜻한다. 향은 쌀 중심으로 깔끔하게 올라오고, 단맛과 산미의 균형도 정돈된 편이다. 양조장 관계자는 “니가타를 대표하는 사케용 쌀인 고햐쿠만고쿠(五百万石)를 정미도 50%까지 깎아 쓴 배치”라고 설명했다. 고햐쿠만고쿠는 니가타 지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사케미로, 잡미가 적고 담백한 질감을 만드는 데 유리한 품종으로 평가된다.
니시키고이를 통해 이마요츠카사가 ‘순미’와 ‘원주’라는 방향성을 어떻게 제품으로 구현했는지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량 소비재라기보다, 양조장의 정체성과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작품에 가깝다.
니가타에서의 두 번째 방문지는 니가타현 나가오카시(長岡市)에 위치한 아사히주조(朝日酒造)다. 이곳은 니가타현을 넘어 일본 사케 시장에서도 널리 알려진 대형 양조장이다. 방문했을 때 첫인상부터 이마요츠카사와는 분명히 달랐다. 전통 목조 공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마요츠카사와 달리, 아사히주조는 넓고 정돈된 시설과 전시 공간, 시음 공간이 결합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마당 한편에는 “久保田(쿠보타)”라는 브랜드명이 크게 보였고, 양조 설비 역시 대량 생산을 전제로 구성돼 있었다.
아사히주조의 기원은 1830년, 나가오카시 아사히 지역의 작은 양조장 ‘쿠보타야(久保田屋)’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메이지 시대를 거치며 ‘아사히야마(朝日山)’이라는 사케 브랜드가 만들어졌고, 회사명 ‘아사히주조’ 역시 창업지의 지명에서 유래했다. 이 양조장은 처음부터 특정 지역의 쌀과 물을 기반으로 성장한, 지역 밀착형 사케 기업이었다.
현대에 들어 아사히주조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브랜드가 바로 쿠보타다. 쿠보타는 1985년에 출시되었으며, 니가타 사케의 전형으로 알려진 담백하고 드라이하며 부드러운 깔끔한 스타일(淡麗辛口)을 대표하는 라인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니가타 지역의 연수(軟水)와 사케용 쌀, 저온 발효 관리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맛의 방향성을 집약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사히주조는 이러한 니가타식 스타일을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지역 농가와 협력하여 사케용 쌀을 확보하고 양조장 주변 지하수 기반의 연수를 사용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니가타 사케가 흔히 ‘잡맛이 적고 깔끔하다’고 평가받는 배경에는, 원료 관리와 물, 발효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 아사히주조는 이러한 요소를 대규모 생산 체제에서도 재현할 수 있는 양조 시스템을 구축한 점에서 특징적이다.
시설 측면에서도 아사히주조는 규모 있는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조 공정 전반에서 발효 온도 관리, 여과와 병입 공정의 표준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쿠보타와 같은 대형 브랜드가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 양조장은 니가타를 대표하는 사케 기업 중 하나로, 일본 내외에서 쿠보타 브랜드를 통해 널리 인지되고 있다.
쿠보타는 기본적으로 담백하고 건조한 니가타 스타일을 중심으로 하지만, 여러 등급과 제품군을 통해 폭넓은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만쥬(萬寿), 센쥬(千寿) 등으로 구분되는 제품들은 쌀의 정미도와 양조 방식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며, 이를 통해 일상용부터 고급 선물용까지 다양한 수요를 포괄한다.
이마요츠카사가 ‘순미·원주·소량 실험’이라는 방향으로 개성을 구축해 왔다면, 아사히주조는 ‘대형 브랜드·품질 재현성·라인업 전략’을 통해 니가타 사케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모델을 만들어 왔다. 같은 지역의 쌀과 물을 사용하면서도, 양조장의 규모와 운영 방식에 따라 사케가 전혀 다른 산업적 위치와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점이 이 두 양조장의 대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니가타에서 양조장을 둘러보며 계속 떠올랐던 질문은 ‘한국에서는 이 구조가 어떻게 존재하는가’였다. 한국 역시 쌀을 기반으로 한 맑은 술 전통이 길다. 다만 제도와 분류, 그리고 용어가 전통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주(淸酒)’라는 용어다.
한국어에서 청주는 원래 ‘맑게 걸러낸 쌀술’을 의미했고,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약주들도 성격상 모두 청주였다. 그런데 현재 한국 법률에서 ‘청주’라는 명칭은 현실적으로 일본식 사케 제조 방식에 가까운 술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통 누룩 기반의 술은 ‘약주’로 분류된다. 이 역전 현상은 일제강점기 주세제도 분류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 왔다.
일제강점기 주세 제도에서 일본식 사케 기준이 ‘청주’ 규격으로 채택되었고, 조선 전통 누룩술은 다른 범주인 ‘약주’로 분리되었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광복 후에도 분류 체계가 완전히 재정비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오늘날까지 용어 혼란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현행 주세법상 ‘약주’는 쌀 등 전분질 원료로 빚은 맑은 술을 뜻하고, ‘청주’는 그중에서도 누룩 사용량이 낮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본식 사케는 코지(糀, 누룩) 사용 방식이 표준화되어 있고 발효 조건이 안정적이어서 이 기준에 상대적으로 맞기 쉬운 반면, 전통 누룩 기반 한국 청주는 누룩 사용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 ‘약주’로 분류되기 쉽다.
즉, 2026년 현재에도 한국의 전통 청주가 ‘청주’라는 이름을 쓰기 어렵고, 일본식 공정에 가까운 술이 ‘청주’로 분류되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시중에서도 ‘청주’라고 팔리는 제품 상당수가 일본 사케식 공정과 유사한 경우가 있고, 전통 청주 계열은 ‘약주’로 표기된다. 이 문제는 단순한 이름 논쟁이 아니라, 전통주 산업의 정체성·시장 커뮤니케이션·수출 라벨링에도 영향을 준다. “청주와 약주의 용어를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도 전통 누룩 기반의 프리미엄 약주가 다시 등장하고 있고, 젊은 양조자와 소비자층도 확장되는 분위기다. 제도·표기·분류가 전통과 산업 현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보인다.
니가타의 이마요츠카사와 아사히주조를 한 번의 여정에서 연속으로 보면, 니가타 사케 산업이 한 가지 모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마요츠카사는 ‘도심형 양조장’으로서 순미 체제와 원주 중심의 메시지를 제품과 투어에 결합했다. 아사히주조는 쿠보타라는 대형 브랜드를 중심으로 표준화된 품질과 라인업 전략을 통해 내수·수출 시장에서 확장해왔다. 두 양조장은 같은 니가타의 쌀과 물로 출발하지만, 운영 방식과 목표가 달라 제품의 성격과 시장 위치도 달라진다.
이번 니가타 방문은 ‘사케를 마셨다’는 경험을 넘어, 사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제조), 어떻게 설명되고(투어·브랜딩), 어떻게 시장에서 유통되는지(규모·전략)를 비교해 보는 자리였다. 동시에 한국의 청주·약주 분류 문제처럼, 술의 이름과 제도가 전통과 어긋날 때 어떤 혼란이 생기는지 돌아보게도 했다.
결국 한 잔의 술은 원료와 공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산 구조, 유통, 그리고 제도까지 포함해 이해할 때 더 정확해진다. 니가타에서 본 두 양조장은 그 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