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베지테리언의 길을 걷기로 한 동기는 무엇?
고기 없는 삶을 살아보자 결심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처음 그 마음을 두드린 결정적인 계기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 가 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으면서였던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지도 못했지만) 읽으면서 조금씩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고기라는 재료가 쓰이는 과정에 대한 번민이 시작되었다. 무자비하게 살생되거나 비윤리적으로 도축하는 장면들에 대한 이미지가 특히 크게 다가왔었다. 그 큰 동기는 불교계에서 살생을 금하여 고기를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밝히는 하나의 작은 반전은, 원래부터가 육류 먹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제목이 “베지테리언 도전기”라고 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그야말로 현실 사회에서 고기를 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비약을 조금 보태어 육류라는 범주로 묶이는 모든 ‘고기’를 피하기 위한 일은 비 사이로 막가기 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운, 혹은 어려운 일같다. 자기 의지의 문제에서 벗어난 문제들이 속속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의도치 않게 발생되는 ‘고기’ 회식자리라거나 정말 비주얼적으로 맛있어 보이는 ‘고기’ 음식의 등장,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구실로 ‘고기’를 권하는 엄마, ‘고기’ 식성을 가진 자의 ‘왜 이 맛있는 것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불편한 시선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식향(食向) 노선을 정하지 못했던 것. 그래서 베지테리언 도전은 매번 실패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기 소신과 강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타개 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눈총과 시선들을 피해나갈 강인한 심장이 없다는 점과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 베지테리언 되기를 쉽지 않은 일로 만들어버렸다. 또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음식을 함께 먹을 일도 없을 테고, 굳이 나의 식성에 대해 밝혀가며 불편해야 할 이유도 없을 테니 그런 자리를 피해보자 해도, 사람 좋아하는 나로선 사람과의 만남의 자리도 피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매번 내 식성에 맞춘 메뉴를 먹자고 하는 것도 이기적인 일 같아 먼저 말을 꺼내지도 못했고.
이렇게 고기 권하는 것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타의에 의해 혹은 자의에 의해 그 결심이 무너지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외면 말고 그 길을 걸어보자는 재결심(?)이 섰다.
그래서 어떤 베지테리언 길을 걸을 건지?
네이버 검색창에 베지테리언을 검색하면 허용/비허용 취식 내용에 따라 분류된 베지테리언 종류가 나온다. 베지테리언의 그 종류만 해도 엄청 다양하고, 굉장히 상세하게 분류되어 있다. 이 모든 종류 중 하나로 정하거나 어떤 범주에 포함되고 싶지 않았지만 굳이 내 노선에 맞는 한 가지를 고른다면 ‘플렉시테리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해 나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육류를 배제한 식단을 지켜나가는 ‘간헐적 베지테리언’이 되어보겠다는 것이다. 나 좋을 대로 먹으며 살겠다는 이야기다. 돼지, 소, 닭고기 등 그들이 살생되며 얻어지는 고기는 피하고, 그들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달걀, 우유나 2차 가공된 치즈 등은 먹을 것이고, 어패류 또한 나의 식단을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
어느 범주, 제약, 카테고리를 요리조리 피해 취향의 문제와 동일한 시점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베지테리언 식단을 풀어나가보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글을 써볼 건지?
- 때로는 자기 견제, 때로는 다독임, 때로는 자기 검열
발행할 글들이 이 도전을 쭉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견제의 도구이자 자극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베지테리언 설명서나 참고서라기보다는 꾸준한 자기 검열, 기록, 반추, 반성하는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고기 권하는 사회에서 고기를 요리조리 피해 가는 방법은 뭐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한 흔적을 남기고, 나의 식단 취향을 다른 이에게 공유하고, 스스로 식단을 정비하는 일지(日誌) 정도가 되면 좋겠다.
나아가서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혹은 공감이 될 수 있는 글이 된다면 더욱 좋겠다.
+ 보너스로 고기 재료는 물론, 고기육수조차 쓰지 않는 맛집이라거나 대놓고 베지테리언을 위한 식단을 꾸려놓은 식당 정보도 가끔 (광고 없이 개인적인 취향만 담은) 올라 올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도서나 영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고.
결국은 베지테리언 결심의 뒷받침이자 버팀목 혹은 명분이 되어 이 도전을 쭉 이어가게 해 줄 계기로 삼아보고자 한다. 이 글로써 진정한 육식과의 전쟁을 선포해보려고 한다. 탕탕.
.. 종국에 가서는 ‘도전 실패기’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한번 써 내려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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