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획자 에딧쓴 Sep 15. 2023

니가 사람이냐?고 묻는 서비스

호칭과 프레이밍에 대하여

네가 사람이 맞느냐


여기, 네가 사람이 맞나 확인해 보겠다는 서비스 문구가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제목 보고 어그로인 줄 아셨죠? 어그로는 맞지만 뻥은 아닙니다. UX 라이팅과 텍스트 경험에 대해 강의를 준비 중이었는데요. 때마침 지인이 저런 캡처를 보내주었습니다.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 제가 하도 일 얘기를 많이 했나 봐요. 이어서 이런 짤도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출처: MBC)


저희끼리 자주 하던 농담이었거든요.


"와 진짜 사람 맞나?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농담 맞아요. 싸우는 거 아닙니다.)


그런 사전 맥락이 있다 보니 디스코드 가입 중에 '사람이 맞나 확인'해보겠다니까 움찔한 거죠. 물론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걸 보고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한 번 더 놀리기는 했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고마웠어요. 다음날 강의 오프닝으로 써먹었거든요.



저 극악무도한 문장은 아마 이 보안확인절차의 변형이었을 겁니다. '로봇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이 다소 어색하다고 생각했는지, 사용자가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정형을 긍정형으로 바꾸었으니, 훌륭한 UX 라이팅이 되었다고 평가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쉽지만 저는 좋지 못한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긍정형을 사용했을지는 몰라도, 맥락과 뉘앙스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으니까요.


사실 '로봇이 아니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과정도 그리 유쾌한 표현은 아닙니다. 사용자를 로봇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요. '너는 로봇이냐?'라고 질문하면서요.


이런 패러디도 있었지요.


위 움짤의 영상버전은 여기(https://youtu.be/zbQhiL7JAvg)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막이 없는 원본 영상과 조회수가 비슷하다고 해요. 한국인들이 특히나 저 워딩을 공격적으로 느끼나 봅니다. 로봇팔로 저 질문을 뚫는 패러디 영상도 있는 걸 보면, 비단 한국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나를 뭐라고 부르는 거야?


여기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만든 것은 호칭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불렀을 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어에선 그리 부드러운 표현은 아니니까요. 이전 글에서 잠시 친구라는 호칭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는데요. 사용자를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배민의 VIP 호칭들


배민은 VIP를 다 VIP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보통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골드회원, 실버회원 같은 표현이었던 것 같은데요. 일반회원도 일반회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고마운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VIP부터는 귀한분, 더귀한분, 최고등급은 천생연분이라고 부르고요. '더' 귀하다고 한 글자만 붙여서 등급을 나눈 것도 재미있고, 천생연'분'으로 뒷글자를 맞춘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괜스레 만난 적도 없는 배민이라는 사람에게 대접받는 기분도 들고요.


에딧쓴이라고 하지는 않고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점심을 종종 시켜 먹던 위잇딜라이트라는 서비스인데요. 유튜브 구독자 애칭처럼, 소비자들을 '잇둥이'라고 이름 붙여 불러줍니다. 본 적도 없는 다른 소비자들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서비스와도 친밀하게 연결된 느낌을 주더라고요. 물론 개인한테 발송하는 메시지에서는 '잇둥이님'이라고 안 하고 이름을 써서, 저에게만 발송되는 메시지임을 나타냈습니다. 굳이 "이 메시지는 구독을 중단한 고객님에게만 발송되는 메시지입니다."라고 딱딱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니 괜스레 미안함이 올라오는 것 같네요.. 곧 돌아갈게요..


고객님!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것은 고객님이라는 호칭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반가운 느낌은 아닙니다. 뭔가 딱딱하게 형식적인 대접을 받는 느낌이라서요.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정중하고 보편적인 호칭을 편하게 느끼시는 분도 계실 테니까요.


하지만 저 메시지가 달갑지 않았던 것은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저렇게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당첨되었다고 포장하는 후킹을 싫어하거든요. 빨리 링크를 누르지 않으면 오늘 밤에 사라진다는 유도문구도, 그것을 또 굳이 '수령 불가'라고 쓴 것도요. 원치 않는데 자꾸 재촉당하는 느낌이라서요.


저런 류의 문장이 클릭률을 높일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카피 강의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요. 다만 전환율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저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실제로 구매까지 이어지는지에 대해서요. 게다가, 브랜드 이미지 부분은 손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받아보고 클래스101일 줄 몰랐거든요. 일반 스팸 문자인 줄.... 아는 분이 클래스101에 UX 라이터로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느낌이었어요.


가을에는 역시 다채로운 교육!


아예 부르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는 수강생도 아니고, 고객도 아니고(클래스101도 결제를 하지 않았으니 고객은 아니었지요), 이름을 넣어 뿌리자니 정보수집활용동의를 안 받았거나 정보가 없거나.. 겠지요? 호칭이 없다면 호칭에 대해서 별 생각이 들 일도 없으니까요. 다만 조금 밋밋하긴 하네요.


호칭은 문장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호명하는 사람과 호명을 당한 사람 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프레임을 만듭니다. 무의식적으로 인상이 형성되면서요. 제가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을 구독자라고 부르거나, 독자라고 부르거나, 읽어주시는 분으로 부르는 것은 느낌이 다르지요. 마치 구독자의 애칭이 있어왔던 것처럼 테슬라 님들이라고 부른다면 또 다를 테고요.


위 세 개 예시는 일부러 다 메시지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최근에 메시지 영역으로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대부분 문장의 구조나 표현을 개선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길이 좀 줄여보고 싶다고 하시는 경우도 많고요. 쉽게 놓치는, 고민하지 않는 지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호명의 프레이밍 효과는 강력합니다


트위터 @night11sky 님


프레이밍 효과가 꼭 질문의 방식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전까지와는 다르게 인식하거든요. 김경일 교수님이 강의에서 자주 사용하시는 예시도 있습니다.


철수가 사람을 죽였대 vs 철수가 살인자래


앞 문장은 철수의 행동을 묘사하고, 뒷 문장은 철수를 '살인자'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전자의 경우 철수라는 사람의 정보에 사람을 죽였다는 정보가 더해지지만, 후자의 경우 살인자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인상이 철수에게 덧씌워집니다. 후자가 철수를 훨씬 나쁜 사람이라고 느끼도록 유도하기 쉽습니다.


최근에 보았던 글 제목 중에 공백기와 갭이어라는 제목도 기억에 남더라고요. '커리어와 관련된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던 기간'은 공백기라고 부를 수도, 갭이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공백기는 뜻하지 않게 붕 떠버린 빈 공간이라는 느낌이라면, 갭이어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예시는 밤새도록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호칭과 호명이 가지는 힘은 일상 속에서도 영향력이 크거든요. 사실 '고객님이나 이름이나 별 차이 없어보이는디..'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 허겁지겁 덧붙이는 내용입니다. '사족'이라고 이름 붙이면 갑자기 마지막 내용이 초라해 보이죠?




(진짜 사족)

본문에서 드디어 토스를 언급하지 않고 UX 라이팅 관련 글을 쓴 것 같아서 혼자 뿌듯했습니다. 토스에 억하심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요. 억하심정은커녕 하루에 대체 몇 번이나 접속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플을 자주 켜도록 유도를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오늘은 고양이 키우기라는 걸 처음 해봤습니다. 요즘 그렇게 게이미피케이션 된 포인트 이벤트가 많더라고요.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하게 보상 이벤트를 설계해서, 접속빈도를 높이려는 전략이지요. 올웨이즈는 농작물을 키워서 실제로 집으로 그 농작물을 배송해주기도 하고요. 보통이라면 귀찮아서 한 두 번 둘러보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만.. 이번엔 알람까지 켜두었습니다.


고양이가 귀엽기도 하고요, 고양이 이름을 연인의 이름으로 해두고 서로 누가 먼저 키우나 하는 경쟁이 붙었거든요. 이름을 붙여주는 게 이렇게나 강력하구나.. 생각하다가 글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지인짜 사족, 아니 어쩌면 제일 중요한 이야기)

크몽에서 UX 라이팅 기획 의뢰를 받아볼까 합니다.

아직 테스트 단계라 엉성할지도 모르지만요. 해봐야 느는거 아니겠어요?

https://kmong.com/gig/505391


(물론 메일로 문의주시면 더 좋습니다 :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