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UX라이팅
어떤 표현을 쓰는지를 보면 나이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에서 쓰는 표현들을 보면요.
부제목으로 feat.를 쓰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헐, 대박, 물결표(~) 등을 보면..
아니, 요즘 절므니들은 저런 표현을 보면
'아 아저씨구나' 생각한다고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제가 아저씨인걸..
'잘 쓴 글'에 대해서는 저마다 의견이 다를 겁니다.
누군가는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글을,
누군가는 군더더기 없고 논리 정연한 글을,
누군가는 뭔진 모르겠지만 묘하게 설득되는 글을,
누군가는 막힘없이 읽히는 글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글을 잘 쓴다'에 대해서는
의견을 일치시키기 쉽다고 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떻게 읽힐지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쓴다면,
내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독자들이 어디서 전율을 느낄지,
어떤 부분을 궁금해할지,
머릿속에 어떤 상황과 캐릭터가 그려질지
아는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논리적인 글을 쓴다면
사람들이 어디서 반발심을 느낄지,
마음속으로 어떤 부분을 반박할지,
어떤 부분이 논리의 비약으로 느껴지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입니다.
UX라이팅은 어떨까요?
UX는 사용자 경험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용자에게 어떻게 읽히는지를
아는 사람이 UX라이팅을 잘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잘 쓴다'가 아니라 '잘 쓸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읽힐지 아는 것과 글을 잘 쓰게 되는 것 사이에
약간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읽힐지 아는 것이 글쟁이의 기본 소양이라면,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의도한 대로 읽히게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두 단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대안을 떠올리는 능력입니다.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대체 표현의 수가
당신이 쓰는 글의 디테일을 결정합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미국의 시골길에서 길을 잃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아..아니 스마트폰도 터지지 않고
GPS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날 일기의 첫 문장으로 쓸 수 있는 표현이 몇 개나 떠오르시나요?
길을 잃었다, 큰일 났다, 조난당했다, 혼자가 되었다,
아무도 없다, 여긴 어딜까, 내일은 뭘 해야 할까,
두렵다, 외롭다, 고립되었다...
마션 작가가 선택한 첫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이런 건 어떤가요?
저기 티에라 머시기 제도에는 이것이 단어로 정의되어 있지만,
한국어에는 저런 단어가 없습니다.
어떻게 표현해보고 싶으신가요?
몇 가지 대안을 떠올릴 수 있나요?
한국어는 미묘합니다.
아주 작은 단어 표현, 조사의 위치,
심지어 단어 배열의 순서만으로도
미묘한 뉘앙스가 바뀝니다.
미묘합니다. 한국어는.
한국어는.. 미묘합니다.
미묘하죠, 한국어는.
한국어, 미묘합니다.
떠올릴 수 있는 대체 표현의 수가 많을수록,
내가 원하는 의도대로 표현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제 두 번째 능력이 필요해집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떠올린 대체 표현들 중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능력입니다.
10가지 대체 표현을 떠올렸다는 것은
내 생각을 10가지 느낌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중 내가 가장 전하고 싶은 느낌이 무엇인지,
그 느낌을 가장 잘 나타낸 표현이 무엇인지 골라내는 능력이
바로 두 번째 능력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대충 이렇게 써도 알아먹겠지?
못 알아먹으면 늬들 문해력 문제지
- 하수
아 이렇게 쓰면 저렇게 오해할 텐데..
저렇게 쓰면 그렇게 보일 것 같은데..
- 중수
그럼 이렇게 써야 하나?
아 대신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써도 뜻은 통할텐데..
- 고수
아 이거다.
이 문장이 내가 전달하고 싶은 뉘앙스에
제일 가깝다.
- 톨스토이
하수는 본인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왜 이해 못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렇게요.
중수는 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대충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글이 써지지는 않을 겁니다.
고수는 같은 생각을 여러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무엇이 베스트인지 고르기 어려워합니다.
그중 가장 베스트를 고를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서면,
세상은 그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수여합니다.
'날씨가 좋다'라는 말의 대체표현을
20가지는 떠올릴 수 있어야 책을 쓰기가 수월해집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은
'대체 표현을 찾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조금 더 내 의도대로 내 글을 읽어줄까'라는 고민의 시작점이죠.
제가 UX라이팅을 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같은 뜻을 전달하기 위해
더 간결한 표현은 없는지, 더 명확한 표현은 없는지,
더 친근한 표현은 없는지, 더 매끄러운 표현은 없는지,
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은 없는지..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이 몇 개만 늘어도
글이 비약적으로 좋아지리라 확신합니다.
운이 좋게도, 요즘은 저마다 도와줄 존재를 끼고 삽니다.
음.. 개인적으로 생성형 AI는
사용해야 하는 방향성과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글로 적어볼게요.
연휴 동안 깃허브라는 곳에 처음으로 출석도장을 찍어봤습니다.
개발자들이 코드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같은 곳인데,
저 초록색 점이 출석도장과 같은 개념입니다.
개발자 분들이 보시면 참으로 하찮은 출석부지요 하하
개발은 역시나 저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한 글쓰기 단계를 끌어올려줄
피그마 플러그인을 만들어봤어요.
거의 완성단계입니다.
조만간 공개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