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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Dec 27. 2021

직장인, 브런치 구독자 상위 1% 작가가 되다

브런치 작가 4년을 되돌아보며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건 4년 전, 막 회사 생활에 적응한 직장인 3년 차 때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훤히 아는 친한 동료들도 생기고, 나의 강점을 회사에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 월요병 따위는 모르고 잘 지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퇴근하는 만원 버스에 올라타면 이 세상에 나 혼자인듯 공허해졌다. 이대로 30대를 맞이해도 되는 걸까? 나 정말 이렇게만 살아도 충분한 걸까? 내가 나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술 마시고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정시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날도 별 뜻 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TV 대신 노트북을 펼쳤다. 브런치라는 게 있다는데 글쓰기 플랫폼이라네? 몇 년 전부터 블로그에 책 리뷰를 써오고 있었지만 오로지 내 이야기만으로 글을 써본 적은 없었다. 나름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했어도 4년간 배운 지식과 글쓰기 욕구를 제대로 활용하며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써보자. 작가 신청에서 떨어지면 하는 수 없고. 첫 번째 글을 쓰는 데 다섯 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4년 후,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브런치 구독자 상위 1%, 라이킷 상위 0.5%라는 성적표를 지닌 작가가 되었다. 4년 동안 브런치에 써온 글들을 모아 1권의 책을 출간했고, 유명 매체에 기고도 하고,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와 모임들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단지 글을 썼을 뿐인데, 되돌아보니 이 많은 것들을 일궈냈다. 직장에 다닌다는 것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확신한다. 직장에 다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브런치에서 보내준 성적표


4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만든 글쓰기 이력 및 포트폴리오 (2021.12 기준)


- 2021.12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유수진 에세이> 개설
- 2021.11 한국국토정보공사 <땅과 사람들> 웹진 기고
- 2021.11 서울산업진흥원 <함께 읽는 글쓰기> 리더
- 2021.08 원티드 에딧 객원 에디터
- 2021.06 권선청소년수련관 청소년 대상 에세이 강의
- 2021.03 중앙일보 지식콘텐츠 '폴인' 객원에디터
- 2020.10 강동구평생학습관 ‘에세이 작가에게 배우는 일상 속 글쓰기’ 온라인 강의 진행
- 2020.08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웹진 칼럼 기고
- 2020.08 문토 <글까짓거> 3기 글쓰기 모임 리더
- 2020.05 문토 <글까짓거> 2기 글쓰기 모임 리더
- 2020.01. 문토 <글까짓거> 1기 글쓰기 모임 리더

- 2019. 05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홍익출판사 출간


사람들은 말한다. 직장에 다니면서 이 많은 일들을 하는 게 가능하냐고.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남들보다 비교적 편하게 외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만큼의 일을 해내진 못했어도 분명히 그의 반절이라도 해낼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아주 작은 재능을 바탕으로 작가 활동을 하면서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주말 내내 침대에만 누워 있던 내가, 퇴근하자마자 노트북을 펼쳐서 글을 쓰고, 주말에는 강의와 모임을 나가고,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자료를 수집했다. 일은 벌여놓으면 어떻게든 수습이 된다는 것을, 내가 모르던 초능력이 나온다는 것을, 직장인이자 작가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 회사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나만의 글감이 됐고 무엇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시부터 7시까지 직장에서 일하는 루틴이 꾸준히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대단하게 포장할 필요 없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유치원 선생님인 우리 언니의 직장 생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속으로 '와, 이거 진짜 좋은 글감인데'라고 생각하지만 언니는 이게 무슨 글감이 되냐고 한다. 본인만 모른다. 그 이야기가 자기 분야 바깥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혹시 브런치 작가가 되기를 망설이고 있다면 당신은 당신만의 주제를 이미 갖고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꺼내는 방법을 모르거나 꺼낼 용기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달 브런치에서 생각지 못한 위 성적표를 보냈을 때 상위 1%, 0.5% 하는 숫자를 보고 감격을 했다. 성과주의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성적을 중심으로 공부를 해온 세대라 그런지 높은 숫자가 여전히 뿌듯함을 안겨주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안 상위 1% 작가가 되겠다는 목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구독자가 1,000명이 됐을 땐 2,000명이 되길 바랐고 5,000명을 넘어간 지금은 6,000명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지, 어떤 집단에서 상위 1%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다. 구독자 수는 엎어질 일이 크게 없지만 상위 O% 라는 숫자는 언제든 엎어질 수 있는 숫자이다.


지난 4년 전에 비해 너무나 훌륭한 작가들이 더 빠른 속도로 나오고 있고, 지금도 내가 갖지 못한 흥미롭고 신선한 경험들이 글감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나 역시 지난 4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의 4년도 다양한 포맷의 글을 쓰면서 '쓰는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좋은 이야기가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하려 한다.


성적표는 엄마에게  전달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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