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 아트스테이 <나답게 쓰는 날들> 강연 후기
도착하면 매니저님께 꼭 이것을 여쭤보고 싶었다. 저를 어찌 아시고 울산에 불러주셨나요? 사실 장생포 아트스테이에서 <나답게 쓰는 날들> 강연을 요청받았을 때 거리에 대한 부담으로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다. 게다가 저녁 늦은 시간에 진행이 되기 때문에 하룻밤을 묵고 와야 하다 보니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약간의 고민 끝에 '가겠다'라고 말씀드렸다. 왠지 모를 이끌림이라고나 할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울산에, 훌륭한 작가님들이 거쳐가신 곳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가보겠는가.
오전에 업무 미팅을 하고, 가방을 꾸려서 광명역 KTX로 향했다. 역 안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간이 잘 안 됐다. 오전에는 회사 일을 하던 직장인에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울산에 가는 작가로 모드 전환이 필요했다. 요즘은 모드 전환의 주기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
장생포 아트스테이에 도착한 건 강연이 시작되는 저녁 7시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시점이었다. 배도 약간 고프고, 잠시 숨을 고를 장소가 필요해 주변을 돌아보니 장생포 문화창고 안에 '지관서가'라는 멋진 북카페가 있었다. 카페 내부도, 바다 뷰도 무척 멋진 공간이었지만 사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글쓰기 강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20년, 코로나와 맞물리면서 대부분 온라인으로 강연을 하거나 오프라인에서 10명 이하의 소규모로만 진행을 했었다. 최근 들어 여러 사람 앞에서 오프라인으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자주 생기고 있는데, 아주 오랜 경력이 쌓이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긴장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어쩌면 평생?). 북카페의 아름다움은 내일 더 만끽하자고 생각하고, 다시 강연장으로 향했다.
강연장으로 향하는 길에 부둣가가 있었는데, 한 분이 혼자 부둣가에 앉아 계셨다. 워낙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한 사람만 나타나도 반가운 마음에 '저분은 여기 주변에 사시는 분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하며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내가 강연장에 도착한 뒤로 그분이 강연장에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 주변에서 마주친 모든 분들이 어쩌면 나와 같이 7시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이날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을 하였다. 첫 번째는 '나답게 쓴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내가 언제부터, 왜 나를 나답게 쓰며 살고 싶어 졌는지, 그리고 글을 통해 어떻게 나다움을 발견 해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두 번째는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왜 글을 잘 쓰고 싶은지,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강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도 '나다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나다움은 고정값이 아니며, 내가 생각하는 나다움이란 계속해서 변화해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나다움'은 크고, 대단하고, 특별한 일보다는 일상의 아주 작고 소박한 부분에서 자주 발견이 되곤 한다. 그래서 내 책에는 변기를 뚫는 일부터, 길에서 바바리맨을 마주친 경험까지 아주 사소한 이야기가 많다. 그러한 이야기가 쌓여 만들어진 이번 책 <나답게 쓰는 날들>이 현재 나의 나다움이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강연에서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앞에 앉아 계신 처음 만난 분들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친근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에세이를 통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속마음을 꺼낼수록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Q&A 시간에 받은 질문 중에는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
"글을 시작하기가 어려울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는 말콤 글래드웰 작가의 말을 빌려 "중간부터 시작하세요"라고 답변해드렸다(저 순간에는 작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작가의 이름을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이름이 세 글자 넘어가면 안 외워져요 흑흑).
말을 할 때는 생각나는 것부터 먼저 던지고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반면에, 글을 쓰려고 하면 처음부터 형식에 맞게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 보니 첫 문장을 쓰기가 어려워지는데 내용의 중간 부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을 쓰기가 훨씬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글의 맛이 살아날 확률도 높아진다.
"아무리 쥐어짜도 글이 안 써질 때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질문은 강연을 마친 뒤, Q&A 시간에 질문하지 못했다며 한 분이 내게 다가와 건넨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는 "책"이라고 답변해드렸다. 나 역시 쓸 만한 글감이 없을 때면 책을 펼치는데, 그 어떤 방법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책을 통해서도 글감이 발견되지 않으면, 평소 자주 읽는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책을 펼쳐보시기를 권해드렸다. 작가의 관찰력은 의지의 문제이기에,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글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사인을 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주셨는데, 이때 드디어 매니저님께 나를 어떻게 알고 섭외하셨는지 여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인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니저님께서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나의 책을 읽게 되셨고, 좋은 인상을 받아 나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셨다고 한다. 그동안 상상해보지 못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국 도서관에서 우연히 내 책을 읽게 된 많은 독자 분들의 순간순간들을 상상해보게 됐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일상의 바쁨과 어지러움을 잠시 바다에 털어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또 언젠가 좋은 기회로 다시 만나뵐 수 있기를.
잊지 못할 여름밤, 내 이야기 들어준 강아지 '청이'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