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올해 열여섯 살인 백은별 양은 중학교 2학년 때 소설 <시한부>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백 작가가 다니고 있는 수지중학교 도서관에는 그녀가 쓴 책이 꽂혀 있고 같은 학교 친구, 후배들을 포함해 무려 300명이 넘는 팬들이 모인 채팅방도 있다고 해요. 하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늘 딱 죽을 마음을 먹고 마지막 책을 읽으려고 서점에 갔다가 <시한부>를 읽고 다시 살아볼 용기를 얻게 됐다"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백 작가는 어떻게 어린 나이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감동적인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인터뷰에서 3가지를 주목해 봤습니다.
첫째,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글쓰기를 실행한 것입니다. 백 작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 차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죽을 날을 정한 삶도 시한부라고 할 수 있을까?'하고요. 당시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백 작가는 청소년들의 자살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죠.
생각해 보면 저 역시 사춘기가 극에 달했던 중학생 때 백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학교에 가다가 버스에 치여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내 장례식엔 누가 와줄까, 많이 슬퍼해 줄까, 하는 생각들. 차마 누군가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당시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조심스러워서 억지로 생각을 잠재우려고 노력했어요.
백 작가는 달랐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른 바로 다음 날부터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죠. 구체적인 묘사를 위해 우울증 커뮤니티에 들어가 실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생각보다 자신의 또래 중 우울증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면서, 직접 겪어보지 못한 부분은 자료 조사로 채워 나가며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힘내." 같은 말이 아니라, 지나간 날들까지
인정받아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 <시한부> 여리박빙 중
둘째, 학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글을 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글은 '시간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쓰는 것인데 말이죠. 학생인 백 작가가 학교 쉬는 시간을 틈타 글을 쓰는 것처럼, 직장인이라면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잠들기 전 1시간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글을 쓸 수 있을 거예요. 물론 밥 먹기도, 잠을 자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글을 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정말 글을 쓰고자 한다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글을 쓸 시간을 만들어 내야겠죠.
마지막 세 번째는 주변 사람들의 든든한 지지입니다. 백 작가의 어머니는 딸에게 "공부 안 해도 돼, 너는 식당을 해도 잘할 거고, 꽃을 팔아도 잘 팔 거야."라며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해요. 학업이 중요한 시기라 글을 쓸 시간에 시험 성적을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자신을 믿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 있었기에, 백 작가가 더 좋은 작품을 써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친구와 후배들도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주고, 내 글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작가는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으니까요.
백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청소년 때 백 작가의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내 감정이 틀린 게 아니구나',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구나'하며 불안한 마음을 쓸어내리지 않았을까 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청소년 문학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백은별 작가처럼, 세상에 청소년 작가님들이 더 많아진다면 어디에선가 홀로 걱정스러운 밤을 보내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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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