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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Apr 14. 2018

왜 운전대를 잡고 싶었을까

올해 버킷리스트, 도로 연수를 마치고

올해 꼭 하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는 운전 배우기였다. 2011년에 면허를 딴 이후로 단 한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도 없고, 나 죽는 건 안 무서워도 남한테 피해끼치는 것만큼은 소름끼치게 싫어해 평생 운전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웃기지만 운전을 할 줄 알아야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로망 때문에. 둘째, 삶의 질을 높이고 싶어서. 셋째, 회사에서 외근 나갈 때마다 매번 옆자리나 뒷자리에 타는 게 죄송해서. 넷째, 대중교통을 이용해 먼곳까지 나가기 부담스러워하는 엄마를 편하게 모시고 다니고 싶어서.

 

멍을 잘 때리고, 딴 생각을 잘하는 스타일이라 운전은 안하는 게 낫지 않을까 했지만 주변 사람들 대다수가 내가 운동신경이 좋아서 왠지 운전을 잘할 것 같다고 용기를 줬다. 그래, 남들 다 하는 운전, 나라고 못할소냐 하는 패기로 방문 연수를 신청해 총 10시간의 도로연수를 받았다.




총 10시간 수업을 4번에 걸쳐 받게 되는데, 첫째날과 둘째날에 액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 잘못 밟는 실수를 했다. 뉴스에 종종 나오는 액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해 일어나는 큰 사고가 정말 남의 일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마음 속으로 '겸손하자' 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도로를 달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뒤에 있는 차들을 위해서라도 더 속력을 더 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또 '겸손하자' 고 되뇌었다. 소란스럽게 빵빵대던 차들도 결국은 알아서 피해 간다. 괜히 빵빵대는 소리에 내가 갈팡질팡 움직여대면 다른 차들이 피해가지도 못하는 더 큰 불상사가 생긴다.

 

겸손하게 운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나의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쪼개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저기 앞에 신호등이 파란색이다. 액셀을 더 밟아주어도 좋다. 나는 지금 액셀을 밟고 있다. 저기 앞에서 유턴을 할 거다. 왼쪽 깜빡이를 켰다. 브레이크를 살짝 밟는다 왼쪽 미러를 보니 차가 오고 있다. 속도를 더 줄이고 왼쪽으로 살짝 머리를 들이밀어 놓는다. 다시 미러를 보니 오고 있는 차가 없다. 속도를 조금 높여 왼쪽 차선으로 완전히 들어간다' 이렇게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입밖으로 말하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처럼 너무 천천히 달려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사실 도로 위의 무법자는 초보운전자인 내가 아니라 배테랑 운전자들인 것 같았다. 깜빡이 없이 무섭게 치고 들어오거나, 조금 느리다고 무작정 빵빵대고, 신호도 지키지 않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최대한 양보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에스컬레이터에서 누군가 새치기로 내 앞에 치고 들어오거나, 내 걸음이 조금 느리다고 뒤에서 빨리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면 소심하게나마 째려보기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절대 양보같은 건 안해줬을 텐데. 도로 위에선 그럴 수 없으니 참 분통터지고 답답한 노릇이었다.  


도로 연수를 마치고 엄마에게 도로에서 만난 비매너 운전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뉴스에서 운전자들끼리 싸우다가 몽둥이로 차 때려부수고 그런 게 왜 그런지 조금 이해가 된다니까!' 라고 장난스레 말했더니 엄마왈, '엄마도 예전에 호신용으로 하나 들고 다녔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나면 방어해야 되잖아' 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운전이 무서운 건 차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었구나.


 



그래도 이번 년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운전 배우기를 끝낸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오늘 마지막 도로 연수를 마칠 때쯤엔 혼자 차를 몰고 동네 정도는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심감도 붙었다. 내 자신을 조금은 믿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어쩌면 내가 운전을 배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을 믿어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운전이란 운전대를 잡는 그 순간 내 생명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까지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일이니까. 언젠가 나 자신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날이 되면 드라이브용 음악을 틀어놓고 시원하게 바람을 맞으며 내달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직접 운전해서 갈 수 있고, 누군가를 내 차에 태우고 원하는 곳에 데려다 줄 수 있다는 건 인생을 살면서 꼭 얻으면 좋을 능력 중 하나인 것 같다. 차 밖이나 차 안에 있는 사람을 조심해야 함을 늘 명심하면서, 이제 다음으로 키워볼 또 다른 능력을 찾아봐야지.


edityo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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