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진 Sep 16. 2019

삼성, 구글 직원들도 이직한다는 그곳에 이직했다  

#1. 의심의 여지없이 job offer letter였다


삼성, 구글 직원들도 이직한다는
그곳에서 연락이 왔다

3년 여 다닌 회사를 퇴사한 후, 이직할 곳을 찾기 위해 부단히 자료조사를 하고 몇 차례 면접을 보러 다녔다. 왜 하필 뜨거운 여름에 이직을 하겠다고 나서서 온몸의 땀을 서울 바닥에 다 쏟아내고 다니는 걸까. 앞코가 꽉 막힌 구두를 신고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탈 때마다 여름은 이직과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구나, 생각했다.


몇 차례 면접을 치르고 호캉스를 즐기고 있던 어느 아침, ‘리멤버’라는 명함앱을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로부터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며 다음 과제에 대한 안내 메일이 왔다. 음, 과제라. 기간은 넉넉하게 주어졌지만 뭐든지 주어지면 바로 처리해버려야 속이 시원한 나는, 하루 더 숙소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집에 와서 새벽까지 과제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제출 버튼을 눌러버렸다. 당일에 제출할 수도 있었지만 성의 없어 보일까 봐 하루 정도 꾹 참았다.


결국, 면접 일정까지 잡혔다. 면접 준비를 위해 관련 기사를 샅샅이 살펴보던 중, 삼성·구글 등 굵직한 대기업 직원들도 이곳으로 이직하고, 이직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말았다. 쫄지 마, 라고 마음을 다독여봐도 홈페이지에 있는 직원들의 프로필이 자꾸만 금색으로 보였다. 분명 검정 글씨로 쓰여 있는데 내 눈엔 왜 금색으로 보일까. 아, 나는 그들보다 무엇이 잘났는가. 눈 씻고 찾아보면 그런 게 있긴 있는가!


드라마앤컴퍼니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숨막히는) 팀원 프로필



이직할 때 고려해야 할 거 참 많지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푸념은 금세 그 회사에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뀌었다. 회사의 규모, 연봉, 복지, 문화 등 회사를 선택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사람, 또 사람이라는 것을 나이와 경력을 먹을수록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규모를 만드는 것도 사람, 연봉을 만드는 것도 사람, 복지를 만드는 것도 사람, 문화를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 아니겠는가. 회사를 볼 때 이것저것 따져보기 힘들다면 사람을 중심에 두고 고려하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겠다, 싶었다. 그들의 대기업 경력이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사실이지만,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임은 틀림없었다.


실무자 면접을 거쳐, CEO 면접을 위해 'SEOUL'이라고 적힌 미팅실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카더라' 통신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CEO 면접에서 회사의 역사와 앞으로의 방향성 등에 대해 상당히 자세한 내용을 들려주신다고 하던데, 와, 실제로 그랬다.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팀원들을 모두 실제로 만난 듯 그들의 배경을 생생하게 들었고, 그동안의 역사와 앞으로의 방향성이라는 방대한 내용을 완벽하게 압축해 1시간 속성 과외를 받은 듯했다. 면접은 망한 것 같은데 이미 이 회사를 다녀본 것 같은 싸한 기분으로 미팅실을 나섰다.  


며칠 후 CEO로부터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다. 눌러보기 무섭지 않도록 제목은 의심의 여지없이 job offer letter였다. 여느 기업에서 보내는 합격 메일처럼 간단한 메시지만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은 말 그대로 letter였다. 당시 쇼핑중이었던 나는 연애 편지라도 받은 사람마냥 옷가게의 한가운데 마네킹처럼 서서 한참 동안 그 letter를 읽고 또 읽었다. 그래, 이것은 분명 편지였다. 단순히 어떠한 결과를 알리는 공지나 소식이 아닌, 보내는 이가 받는 이를 생각하며 쓴 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제목은 명확할수록 좋은 것 같다


'퇴사'란 말을 내뱉을 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두 글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직'은 퇴사와는 별개로 또 다른 무게를 가진 글자였다. 회사를 찾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사람을 찾는 회사의 입장에서도 서로의 관점과 방식을 잘 맞춰나갈 수 있을지 신중히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어찌 됐건 나는 '사람’을 보고 선택했고, 회사 역시 '사람'을 보고 선택해주셨으니 그 점은 완벽히 잘 맞아떨어졌는지도.


성의가 듬뿍 담긴 letter를 받은 다음날 아침, 몇 번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불과 몇 분 후 답장이 도착했다. 이로써 나는 삼성, 구글 직원들도 이직한다는 그곳에 이직했다. 유독 뜨거운 여름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