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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Mar 05. 2023

전역지원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직업군인, 전역을 결심하다.

전역. 한국 사회에서 '해방'이라는 느낌에 가까운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친 사람이 예비역으로 편입되는 소위 '역종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직업군인에게는 조금 다른 느낌의 단어로 다가온다. 직업군인에게 전역이란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 년 동안 '직업'으로서 군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는' 것을 의미한다. 전역을 준비하든, 하지 않든 직업군인에게 사회는 여전히 두렵고, 불확실함만 가득한 미지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수 (어쩌면 다수일 수도 있는) 직업군인들은 늘 전역에 대해 고민하며 산다. 


전역을 한다는 것. 사람마다 각자의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년을 다 채워서 전역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청운의 큰 꿈을 안고 군에 입대했으나 기대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좌절을 느낀 사람. 잦은 이사와 열악한 처우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 자아실현을 위해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 말 못 할 개인사정으로 불가피하게 전역할 수밖에 없는 사람 등등. 이러한 그들의 '결심'이 전역지원서에 자세하게 표시되지 않지만,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갖고 청춘을 바친 군을 떠난다. 


직업군인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갑자기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다. 그러는 순간 직업군인들은 가슴속 고이 숨겨두었던 '전역지원서'를 만지작 거린다. 그 '현타'는 5년, 10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때론 불규칙적으로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나 또한 그랬다. "대한민국의 장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헌법과 법규를 준수하며 부여된 직책과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를 하고 불과 2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의무복무를 마친 동기들이 전역하자 찾아온 '1차 위기'. 중대장시절 자신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나를 미워하고 무시했던 선배의 악행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군생활을 '접고' 항공사 직원이 될 생각만 하던 '2차 위기', 야외훈련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아내의 유산에도 곁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찾아온 '3차 위기'. 이외에도 말 못 할 4차, 5차 위기가 있었고, 그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매일 취업정보사이트를 드나들며 가슴속 전역지원서를 만지작 거렸다. 물론 실행하지 못했다. 때로는 누가 만류해서, 때로는 내가 비겁해서.


몇 년간 잘 버틴다 싶었는데 최근 갑자기 물밀듯이 '무엇'인가 가슴속에 꿈틀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이 딱 15년 차를 넘긴 시점이다. 어느 정도 군의 섭리를 이해하고, 조직 내에서도 중견 간부로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든다니 정말 그 '현타'는 5년 주기로 나에게 찾아오는 '무엇'인가가 틀림없다. 이는 최근 각종 매체에서 나오는 직업군인 이탈에 대한 위기론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많은 주변 선후배, 동료들이 힘들어하고 있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꿈틀거림'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글을 써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 꿈틀거림이 '진짜'라면, 정말 체계적으로 전역을 준비하기 위한 나의 준비 과정을 기록하고, 슬기롭게 군대와 헤어지는 결말을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그게 진짜가 아닌 그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타'에 불과하다면, 가짜감정임을 '검증'하고,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기록을 활용할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있는 직업군인 동료들에게도 그 결심의 진위를 파악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요즘 내가 군대와 '헤어질 결심'을 한 이유는 바로 "사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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