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부드러운 오란다와 달달한 앙버터 샌드. 각자의 간식을 꺼내고 곁들여 생각도 꺼내본다.
처음엔 술을 좋아하는 내가 즐겁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소설+작가+술'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술과 작가가 좋아했던 술을 소개하고, 소설 이야기와 작가 이야기를 함께 정리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작가들의 삶이나 인터뷰를 정리해 둔 책을 읽었다.
책을 읽을수록 그녀들에게 '술'은 여흥이나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억압과 좌절 속 힘든 현실을 살아내는 진통제였다. 다행인 건 현대로 올수록 그런 경향은 덜하다는 것.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은 더 답답했다. 100년 전 그녀들이 어떤 술을 마셨는지 보다는 마시는 상황을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의 전환은 자연스러웠다.
여성에게 사유재산과 선거권이 생긴 지 100년 남짓. 우리의 역사 속 인물들 중에는 아직 생존자가 있다. 최근 소설에 나와 엄마, 할머니 3대로 이어지는 서사가 자주 보인다.
할머니는 배우지 못했고 엄마는 끼인 상태로 혼란스럽고 나는 그녀들이 답답하다. 2021, 5G, 우주시대, 가상현실을 말하는 지금 언제까지 우울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냐고? 의외로 가까운 이야기다. 할머니는 4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비소로 통장이 생겼고 글과 숫자를 공부하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여전히 의무와 시선 때문에 힘들어한다. 나는 어떻게 그녀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대신 결제하고 결정하고 처리해주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고민한다. 결국 실패하게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