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서의 마지막 날.
그렇게 기다리던 소집 해제. 그러니까 내가 현역이었다면 제대하는 날이었다.
어렸을 때의 사고로 수면 마취가 필요한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은 탓에 나는 현역으로 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려면 갈 수 있지만 굳이 안 가도 되는 상태였고, 나는 당연히 현역 대신 공익을 선택했다. 오른쪽 골반 언저리에 아직도 선명하고 섹시하게 남아있는 수술 자국이 여러 방면에서 좋은 면책이 되었지만 또 그만큼 친구들의 농락을 견뎌야 하는 치부가 되기도 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친구들과 한잔할 때면 놈들은 자신이 어떤 훈련을 견디고 있는지 일장 연설을 하며 집에서 출퇴근하는 놈이 뭘 알겠냐고 너스레를 떨었고 신체 건강하고 일상생활 다 가능한 놈이 병역 기피를 한다며 스티브 킴이라고 어지간히 놀려댔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상처를 보여주려 벨트를 풀었지만 말리기는커녕 핸드폰을 들이대는 놈들 앞에서 나는 다시 바지를 고쳐 입고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동네에 있는 복지관에 공익 요원으로 배치되었다. 복지관에서의 하루는 항상 뭐 같았고, 살갑지 않은 태도 때문에 그곳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나는 급격히 ‘요즘 것들’이 되었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나를 무슨 수족쯤 생각하는 듯 ‘야, 너, 저기’ 정도로 적당히 통일된 내 이름과 근데 또 동네 똥개 부르듯 부르면서 내가 복지관장이라도 되는 것 마냥 나에게 모든 불평을 토해내고 즉각적인 해결을 바라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어르신들 때문에 나는 어느새 질려 버린 참이었다.
그러던 때 나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던 중 누군가 내 뒤에서 등을 툭툭 쳤다. 내 시선은 뒤를 돌아 한참 아래로 떨어졌고 그곳엔 족히 80살은 되어 보이는 왜소하고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서 있었다. 겁을 먹은 건지 난처한 건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 했고 입에서만 맴도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아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되물었다.
“네? 뭐라고요?”
“저기, 한글반 수업을 듣고 싶어서 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아, 네. 안내해 드릴게요. 따라오세요.”
다행히 수강 신청 기간이 지나지 않은 때였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사무실로 올라와 점심시간 후 아직 복귀하지 않은 직원을 대신해 컴퓨터 앞에 앉아 접수증을 내밀었다.
“위에 성함이랑 주소 전화번호만 쓰시고 밑에 원하시는 수업이랑 시간에 동그라미 쳐서 주세요.”
“… 학생 정말 미안한데, 내가 글을 볼 줄을 몰라서.”
“…아 맞다, 한글반 듣고 싶다고 하셨죠.”
“미안해요. 내가 모자라서 괜히 학생 힘들게 하네.”
아, 방금 전 할머니가 한글반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었는데 나는 그새 까먹고 접수증을 들이댄 것이었다. 한글반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보통 글을 쓰거나 읽지 못하는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당황했는지 미로같이 어지럽게 갈라진 주름을 뚫고 퍼지는 할머니의 붉은 얼굴빛에 내가 더 민망해졌다. 나는 할머니의 신분증을 받아 조용히 접수를 대신했다. 82세 한외상. 한글 오전반.
한글반 학기가 시작된 후 나는 어딘가 마음에 걸려 할머니가 수업을 잘 듣고 있는지 자꾸만 확인했다. 복도에서 여러 번 몰래 관찰한 결과 할머니는 항상 정확히 수업 40분 전에 미리 도착해 맨 앞자리 왼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할머니는 복습을 하는 건지 무언가 썼다 지우기를 계속했다. 항상 귤이나 옥수수 같은 것을 싸 와서는 수강생들과 나눠 먹는 것 같았고 가끔은 나에게도 하나씩 쥐여주고 가시곤 했다.
“학생, 나 이것 좀 봐줄 수 있어요?”
첫 학기의 마지막 수업 날, 어김없이 40분이나 일찍 온 할머니가 게시판에 포스터를 붙이고 있던 나를 찾아왔다. 할머니가 내민 손에는 적어도 몇 댓 번은 지우개가 쓸고 지나간 듯 꼬깃꼬깃 해진 종이가 그리고 거기엔 할머니의 주름만큼 깊게 파인 글씨가 있었다. 아마 손이 얼얼할 만큼 힘을 주고 쓴 거겠지. 그 종이는 바로 다음 한글반 수업 신청을 위한 접수증이었다. 삐뚤빼뚤하고 선이란 선은 다 넘어간 큰 글씨였지만 할머니 이름 석 자와 어떤 수업을 듣고 싶은 건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글씨가 못생겨서 창피하지만, 이거 내가 혼자 쓴 거예요. 이제 학생이 힘들게 안 도와줘도 돼.”
할머니는 기쁜 표정으로 나에게 접수증을 건넸고 나는 바로 처리해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에게 접수증을 전해줬다. 자리에 앉은 나는 뭔지 모를 부끄러움이 몰려와 귀가 붉어졌다. 접수를 대신해 주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도와줬다고 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게 나의 일이었고 오히려 글을 못 읽는 할머니를 곤란하게 한 건 나였다. 할머니는 3개월 전 그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고 필요 이상으로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가끔 한글반 수강생들이 직접 쓴 시가 복지관 게시판에 전시될 때가 있었다. 나는 그 게시판을 지나갈 때마다 할머니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여전히 삐뚤빼뚤했지만 글씨체도 맞춤법도 많이 나아지고 있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대한 이야기,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는 이야기, 시집가던 날 자신의 남편을 처음 본 이야기. 게시판의 걸린 시는 대부분 할머니의 웃음처럼 곱고 밝았지만 나는 자꾸만 거친 파도라도 탄 듯 가슴 어딘가가 일렁거렸다.
한글반의 6개월 과정이 끝나고 나름의 졸업식이 있었다. 수강생들은 한데 모여 복지관 직원들이 준비한 학사모와 가운을 입고 졸업증을 받았다. 우연하게도 그날이 내가 공익 요원의 신분을 졸업하는 날과 겹쳐 나는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볼 겸 한글반 졸업식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소녀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었고 얹혀 있는 돋보기안경과 학사모는 근사하게 잘 어울렸다. 나는 쭈뼛거리며 다가가 할머니에게 준비한 꽃 한 다발을 드렸다.
“졸업 축하드려요.”
할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날 보았고 이내 환한 웃음으로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