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 May 11. 2020

일요일엔 목욕탕에 갑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와 아버지는 매주 일요일 함께 동네 목욕탕에 갔다

얼핏 사이좋은 부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은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분명히 내 속에도 아버지의 피가 반 정도는 흐르고 있을 건데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닮은 구석이 없다나의 어린 시절 사진만 봐도 그렇다어렸을 때부터 까불거리던 나는 사진마다 메롱을 하고 있거나브이를 하고 있거나개다리춤을 추고 있거나이 셋 중 하나다한 번이라도 제대로 서서 사진을 찍은 적 없는 까불이 옆엔 웃음 한 점 없는 근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내 기억 속의 가장 오래된 아버지의 모습은 유치원 학부모 참관 수업 날그날은 유치원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비디오로 찍었었는데 내가 자꾸 수업에 집중은 안 하고 날 찍는 VCR 앞에 메롱을 하며 ‘에베베베- 까불자 아버지가 뒤에서 어금니를 꽉 깨문 소리로 조용히 하고 앉으라고 속삭이며 화를 참는 모습이다. (내가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 모습이 찍힌 비디오테이프가 아직 우리 집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처럼 성격이 상극인 두 사람이 어쩌다 끊을 수도 없는 부자 지간이 되어 한 지붕 아래 살아간다는 게 가끔 신기할 정도다.

 

그런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오래된 꿈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들과 함께 목욕탕 가기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임신을 했을 때마다 아버지는 같이 목욕탕 가게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하지만 그 꿈은 참 이루기 힘들었는데 내 앞에 두 누나들이 먼저 태어났기 때문이다가족끼리 목욕을 하러 갈 때면 넷이 갔다 혼자가 되는 외로움을 맛봤을 테니 어머니가 셋째를 가졌을 때 누구보다 아들이길 바랐던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다행히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셋째가 남자였고 내가 어느 정도 등을 밀어줄 수 있는 앙증맞은 힘이 생겼을 때 즈음 아버지는 드디어 그 꿈을 이룰 수가 있게 되었다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까아직 새벽 같은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내방 문을 벌컥 열고서는 ‘목욕 가게 따라 나와.’ 이 한마디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버지가 무서워 졸린 눈을 비빌 새도 없이 급하게 따라나섰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공중목욕탕이란 곳에 가게 되었다.

 

드디어 이룬 꿈에 감격스러워 입을 못 떼는 건지 그냥 나랑 이야기가 하기 싫은 건지 탕 속에 있는 내내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저 내가 뜨거워 못 참고 탕을 나가려 치면 ‘쓰읍.’ 안 놀아주길래 냉탕에서 혼자 수영이라도 할라치면 ‘쓰읍’ 바가지로 물을 퍼다 나르는 놀이를 할라치면 ‘쓰읍.’ 아버지는 뭐든지 ‘쓰읍’ 한마디로 나를 제압했다그래도 끝나지 않는 그 쓰읍의 향연은 참을 만 했다아버지가 내 살 거죽을 다 벗길 기세로 때를 밀기 전까진. 8살 먹은 아이에게 묵은 때가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아버지는 몇십 년 아들을 기다려온 울분이라도 터뜨리듯 때수건으로 내 몸 구석구석을 밀었다아프다고 아무리 말해도 부산 상남자에겐 서울깍쟁이의 엄살로밖에 들리지 않았고 나의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나서야 아버지는 만족하며 나를 놓아주었다그날 집에 돌아와 내 피부를 확인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매운 손바닥 맛을 선물했고 결과적으로 그날 아버지의 등도 나처럼 빨갛게 부어올라 오랫동안 쓰라렸으리라.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던 목욕탕 첫 경험 후 나는 아버지가 목욕하러 가자고 할 때마다 자는 척을 하거나 아픈 척을 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누구는 매주 일요일 교회에 갈 때 나는 꼭 목욕탕을 가야 했고 나는 일요일이 제발 오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언제 한 번은 복수라도 하려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등을 있는 힘껏 밀어보았지만 힘이 시원치 않다는 핀잔만 돌아올 뿐이었다나는 점점 더 속이 상했다언젠간 목욕이 좋아지겠지언젠간 아버지가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참아보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 때 사춘기가 일찍 찾아왔던 나는 더는 목욕탕을 가지 않기로 했고 그 결심은 난생처음 아버지 앞에서 제발 가기 싫다는 나는 놔두고 혼자 가라고 화를 내며 대성통곡을 하는 엉뚱한 형식으로 터지고 말았다원래 계획대로라면 남자 대 남자답게 대화를 해야 했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터져버린 것이다더 놀라웠던 건 아버지는 알겠다는 짧은 대답 말고는 아무 말 없었고 그날 이후로 나에게 목욕탕에 가자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무언가 찝찝한 마음이었지만 드디어 일요일 아침에도 그동안 참아온 늦잠을 늘어지게 잘 수 있었기에 그 마음은 머지않아 아침 햇살에 흔적도 없이 바싹 말라버렸다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매주 일요일이면 혼자 목욕탕에 갔다나는 가끔씩 아버지가 등은 혼자 어떻게 밀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감히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목욕탕과 담을 쌓은 지 몇 년이 훌쩍 지났을 때 나는 우연찮게 아버지와 같이 목욕을 가게 되었다. 2년 전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아버지와 나는 장례식장에 오고 가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3일을 거의 밤새웠고 3일째 되던 날 저녁 아버지는 잠깐이라도 탕에 몸을 뉘여야겠다며 목욕탕에 다녀오겠다고 했다무슨 마음이었는지 나는 같이 가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알겠다고 했다시골에 있는 오래된 목욕탕이라 그런지 오래전 아버지와 갔던 목욕탕과 아주 비슷해 보였다널브러진 흰색 의자와 바구니치약과 소금청록색 오이 비누누가 쓰고 버리고 간 때밀이 수건과 면도기그곳만은 세월이 비껴간 듯 모든 게 그대로였다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탕에 들어갔고 오랫동안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분명히 예전엔 뜨겁고 답답하기만 했는데 탕 속에서의 시간은 내 몸과 마음의 피로는 물론 아버지와의 어색함까지 씻어 내렸다내친김에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릴까 싶어 누가 버리고 간 때수건을 집어 들었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의 등을 뒤에서 제대로 마주했다크고 나면 부모님이 너무 작아 보여 마음이 아프다고 하던데 그 말이 진짜였구나별로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아프다며 약한 소리를 했다내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빨간 선이 그어졌다이상하게 때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게 그렇게 아파서 아버지랑 목욕탕 가기가 싫었잖아요아프다고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네이거 진짜 아프네아파서 눈물이 다 나온다.”

 

나는 그날 아버지가 진짜로 울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등을 밀고 있는 내 손이 아버지의 등과 함께 자꾸만 흔들렸기 때문이다장례식장에서도 3일 내내 울지 않았던 아버지는 때를 미는 내 손이 너무 매워서 그렇게 매운 내 손을 핑계 삼아 울었다그저 등 뒤에 손을 얹었을 뿐인데 말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등을 토닥이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밀었다그제야 나는 아버지는 표현하는 게 너무나도 서툰 사람이라 그래서 그렇게 아들과 목욕탕에 가는 게 꿈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아버지에겐 까불이 아들과 함께 탕 속에 앉아 있는 것 그리고 아들의 때를 최선을 다해서 벗겨주는 것이 본인의 사랑 표현이었을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9월 모의고사와 오이도 그리고 조개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