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ado Jul 24. 2019

[보드게임] Whitehall Mystery

1888년 런던 판 살인의 추억

1888년 10월 2일. 화이트홀 근처의 한 공사장에서 여성의 잘린 몸통 발견.

1888년 9월 11일. 탬즈강변에서 잘려진 오른팔 발견

1888년 10월 18일. 왼 다리 발견.

언론은 이 사건을 화이트채플에서의 살인사건과 연관지으려 하나, 경찰은 이 사건을 그 와는 관계없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고 있음.


1888년, 런던의 화이트채플에서 다섯 명의 매춘부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주 잔인한 수법으로 일어난 사건들이라 이 일련의 사건들은 후세의 사람들에게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바로 근래에 한 사립 탐정의 노력으로 진범이 밝혀졌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던 “잭 더 리퍼”입니다. 범인이 끝까지 잡히지 않은 미제의 사건이라는 점은 잔인한 참사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사람들의 흥미를 당기게 했는데요. 그로 인해 오랜 시간이 흘러 소설, 영화, 뮤지컬 등의 컨텐츠로 재탄생하기에 이릅니다. 이번에 소개할 ‘화이트홀 미스테리’는 이 소재를 보드게임화 시킨 것으로, 잭 더 리퍼가 활동하던 시기에 화이트홀 지역에서 일어난 또 다른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게임입니다. 

한 명은 살인마 ‘잭’,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경찰을 맡아 추격전을 벌입니다. 잭의 목표는 섬뜩하지만 화이트홀 지역 내의 네 곳에 남은 시신을 유기하는 것이고, 경찰의 목표는 잭이 이동하는 도중 검거를 하거나 잭이 정해진 시간 안에 유기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게임 시작 전, 잭은 미리 보드 위의 정해진 장소 중 범행을 저지를 네 곳을 골라서 기록해 둡니다. 잭이 범행 장소를 정하고, 경찰들이 뒤이어 수사를 시작할 위치를 정하면 게임은 시작됩니다. 


경찰들의 위치를 보고, 잭은 가장 먼저 범행을 저지를 장소를 정합니다. 정하고 나면, 잭은 이제부터 제한된 시간 내에 남은 세 곳의 목적지를 모두 지나가야 합니다. 순서는 간단합니다. 잭이 먼저 한 칸 움직이고, 경찰들이 그 다음 최대 두 칸 움직입니다. 잭에게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하는 방향대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요. 런던의 뒷골목을 쏘다니며 경찰을 따돌립니다. 한편, 경찰도 마찬가지로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탐문하고, 수색할 수 있습니다. 운 좋게 잭이 지나간 자리를 수색하면, 노란색 토큰을 얻어 그곳에 표시하고, 잭의 경로를 추리합니다. 처음에는 런던의 복잡한 골목 들에서 보이지 않는 잭을 잡는 것이 막막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사망은 자연스레 좁혀집니다. 잭은 각 사분면에 미리 정해 놓은 장소들을 꼭 들러야 하기 때문에, 잭의 위치는 알 수 없더라도 움직일 방향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플레이어 간의 심리전에 있습니다. 잭은 경찰을 따돌려야 하고, 경찰은 도망가는 잭을 쫓아가는 기본적인 형태를 갖습니다. 이 기본 줄기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더해져 심리전이 극대화되는데, 바로 경찰이 움직이는 길과 잭이 이동하는 길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양측의 길이 절묘하게 겹쳐 있으면서 은근하게 분리되어 있어서, 서로 간에 상대방에 비해 한번에 긴 거리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이 ‘요충지’의 존재 때문에 한 쪽은 쫓고 한 쪽은 도망가는 단순한 형태에서 벗어나 경찰은 한발 앞서가서 방어선을 칠 수 있고, 반대로 잭은 위기일발의 순간을 극적으로 탈출하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이 가진 훌륭한 재미에도 이 게임에 필연적인 호불호가 존재하는데, 바로 사체를 유기하려는 살인마를 쫓는다는 잔인한 테마에서 온 거부감 때문입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지 않은 게임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설정은 아니어서, 설명할 때 은신처에 들른다거나 정해진 장소에서 물건을 훔쳐야 한다는 등의 방식으로 바꾸어서 설명하는 편입니다. 누구에게도 불편함을 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위에 언급한 유의점이 있지만 ‘화이트홀 미스터리’는 분명 엄청난 몰입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게임입니다. 종이로 만들어진 장난감에서 나왔다고 하기에 믿기 어려울 만큼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지요. 네 명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이지만 두 명이서 할 때 가장 재미있고, 서로 잘 아는 상대와 플레이할 때 단언컨데 아드레날린이 솟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보드게임] Saboteu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