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미래의 전략가, 마케터는 데이터 분석가이자 실행가여야 한다.
대학시절에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PEL 융합전공이라는 좀 특별한(사실은 방향없이 잡탕에 가까운)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당시에는 공부는 어렵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교양수업도 듣기 쉬운 수업들은 배제하고 재무관리, 재무경제학 등 타과 전공수업을 교양으로 듣는 패기가 있었다. PEL 융합전공은 정치외교학, 경제학, 행정학 주요 전공을 3과목씩 들어야 했는데, 시험기간이 되면 전혀 연관이 없는 4개의 전공 과목 시험을 공부해야 했다. 시험기간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 때 눈에 발라둔 지식들이 때때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실 하나의 학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학문을 기웃거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똑같은 현상에 대해 각 학문 분야마다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잘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노동쟁의에 대해서 사회학에서는 맑스주의를 기본 골자로 하는 반면, 경제학에서는 각 고용주와 고용인 간의 교섭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 다양한 프레임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도 어떤 현상에 대해 제한된 시간 내에 다양하게 접근해 볼 수 있게된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익숙해지고 DT(Digital Transformation)가 트렌드가 되면서 마케팅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요즘은 업무분장이 명확하게 이루어졌던 과거와는 다르게 마케팅 업무와 그 주변 업무의 경계가 모호해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것은 이게 분석인지 기획인지 전략인지 마케팅인지 도통 구분이 잘 안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마케팅 채널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기본적인 분석을 함께 하고 있는데, 기존의 시각에서 보면 업무분장도 명확하지 않고 두서없이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우리가 당면한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한다. 이후 관련 업무를 asana를 활용하여 대략적인 플랜에 대해 스케쥴링하여 팀원들에게 공유한다. 그리고 자체 제작을 할 수 있는 콘텐츠와 외주를 맡겨야 하는 콘텐츠를 구분하고, 각 스몰 프로젝트를 팀원들에게 할당하여 산출물이 나올 때 까지 알아서 리드하도록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마케팅 부서의 프로세스와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글, 페이스북, 모비온, 네이버, 다음, 캐시슬라이드 등등의 매체를 직접 운영한다. 내 생각에는 대행사를 통하지 않고 매체 직접 운영과 브랜딩 작업을 한 팀 내에서 동시에 수행하는 회사는 없을 것 같다. 보통은 콘텐츠 마케팅은 회사 내부적으로 처리하고 퍼포먼스는 대행사를 쓰는 형태로 진행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다루는 툴은 GDN, 페이스북 광고관리자 등 광고운영 플랫폼을 제외하면, GTM, GA, 구글 옵티마이즈, 페이스북 애널리틱스, Hotjar, Mailchimp 등이 있다. 엑셀이나 구글 앱스는 당연히 다뤄야 하는 것이고 최근 모셔온 영상제작 담당자님과 함께 영상기획 및 촬영(실제로 카메라를 들거나 반사판을 들기도 한다)을 함께 한다. 산출물을 가지고 편집을 해주시면, 5, 15, 60초로 재편집 하여 유튜브 광고를 돌린다. 이렇게 직접촬영이 힘든 경우 다른 업체와 함께 영상촬영을 진행한다. 동시에 넥센 야구단과의 콜라보를 기획하거나 롯데그룹 마라톤 대회 스폰서쉽을 기획하기 위해 컨택하고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웹로그 분석툴 외에도 파이썬을 활용하여 상관분석을 하거나, 시계열 분석을 하기도 한다. 웹크롤링을 통해 워드 카운팅을 하기도 하며, Word2vec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단어 임베딩을, 커뮤니티 간 빈출단어 클러스터링 분석을 한다. 사실상 타 회사의 전략, 기획, 마케팅, 콘텐츠, 퍼포먼스 마케팅, 데이터분석 업무가 우리 팀 내에 전부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마케터인가? 데이터 분석가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것인가?
이전에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근무할 때, 같은 고민을 1년 여 간 매일 같이 거듭했다. 에이전시에 입사하기 까지도 굉장히 많은 고난이 있었다. 첫 직장생활은 영업관리자였다. 당시에 과도한 회식문화 때문에 심하게 고통받던 받으며 파이썬, 머신러닝, 데이터 분석 등을 공부했다. 비전공자로서 녹록치 않은 상황을 이겨내고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에 입사하였으나, 입사 후에도 사실상 "문과 출신 비전공자, 개발자도 마케터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이란 인식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내가 굉장히 존경했던(지금도 존경하고 있는) 팀장님께서는 내가 "개발지식이 있는 마케터"로서 성장하길 바라셨고, 그게 내가 갈 수 있는 최고의 포지션임과 동시에 향후 10년 이내에 가장 유망한 포지션이 될 거라고 확신하셨었다. 사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만나게 된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었기 때문에, 몇번이고 "개발지식이 있는 마케터"로의 길을 가기 위해 마음을 고쳐먹곤 했다. 하지만 태어난 천성이 내 뜻대로 살다가 길바닥에서 굶어 죽어도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모양으로 태어난 것을 어쩌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인사이트로 수익을 창출해 내는 것"에 더 가까웠다. 물론 팀장님께서는 "니가 생각하는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나를 믿고 따라와 봐라"라고 하셨지만, 하루 업무시간을 100으로 놓는다면 코드를 짜는 시간은 0.1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사실 지금도 업무시간중에 코드를 짜는 시간이 길지는 않다. 그보다는 어떤 분석을 해야하는지 생각하고, 필요한 지식을 토막토막 찾아낸 후 빠르게 적용하는 편이다.) 퇴사 후 대학원에 진학했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준 현재의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은 대학원 과정을 수강하며 공부하고, 논문 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마케팅 팀 팀장을 맡고 있다. 팀원들과 함께 위에 언급한 수많은 일들을 처리해가며 성장, 그리고 성장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조금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된 탓에, 앞으로 이곳에 내가 원하는 데이터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은 생각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대학원 수업을 통한 배움들이 연결되면서 디지털 마케팅과 데이터 분석의 접점을 찾는 좋은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SNS 및 커뮤니티의 텍스트 데이터 분석을 통해 타겟 고객군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것을 반영한 형태의 TVC나 콘텐츠 제작에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고, 오프라인 상권 분석도 좀 더 효율적으로 가능할 듯 싶었다. 지금처럼 계속 조금씩만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작게나마 어제 보다 오늘 한 걸음 더 성장하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그곳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보면 데이터 분석을 통한 결과를 수익창출에 마케팅 감각을 더해서 연결 시키는 분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아주 큰 틀에서 데이터와 마케팅을 연결시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해왔던 작업이지만 뎁스있는 데터 분석(이를테면 상용화 된 툴을 활용하고, 툴이 robust하다고 생각되면 파이썬을 통해 직접 분석하는 것을 포함한다)과 마케팅 액션이 하나의 프로세스로 이어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과적 분석감각 과 이과적 분석감각은 정말 상이하기 때문에 이를 동시에 갖추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미래의 마케터는 문과적 감성과 이과적 스킬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툴에 구애받지 않는 전략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