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記憶)

by 쑥갓선생

혜원은 딸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곱씹었다. “엄마 미안해,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그날처럼 날 기억해줘.” 그러나 그 문장이 가리키는 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딸과 함께 보낸 오랜 시간 속에서 특정한 하루를 떠올린다는 것은 의외로 어려웠다. 딸은 늘 조용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였지만, 그녀의 내면 어딘가에는 혜원이 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깊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혜원과 남편이 헤어진 뒤, 딸은 그녀의 삶에서 유일한 가족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딸을 보러 오곤 했지만, 그 방문은 언제나 짧고 피상적이었다. 어린 딸은 아빠를 그리워했지만, 그리움은 곧 익숙함 속에 희미해졌다. 조숙했던 딸은 그 부재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아빠라는 존재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빠르게 자랐고, 어른처럼 행동했다.

딸은 오히려 엄마에게 더 가까워지려 했다. 혜원은 이제야 깨닫는다. 딸의 성과들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작고도 절실한 몸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딸은 그 마음이 들킬까 두려워했다. 그녀는 항상 철저히 자신의 진심을 감췄다.

혜원은 딸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가슴이 미어졌다. 딸이 거둔 성과들 뒤에는 얼마나 큰 압박과 고독이 숨겨져 있었을까? 그리고 자신이 그 고독을 이해하지 못해 딸을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후회와 죄책감에 잠겼다.

며칠 뒤, 혜원은 딸의 소셜 계정을 열어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단서를 찾으려는 작은 희망으로 화면을 살폈다. 화면 속에서 낯선 메시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발신자는 ‘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OpenMind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케이입니다. 따님의 소셜 계정을 통해 연락드립니다. 그녀의 죽음과 관련해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가능하다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혜원은 한동안 그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발신자의 말투는 조심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무언가가 분명히 느껴졌다. 그녀는 이 메시지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편에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지? 왜 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지?”

혜원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답장을 보낼지 말지를 두고 손끝에서 망설임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짧은 메시지를 작성했다.

“무슨일로 저를 찾는 건지요?”

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 혜원은 한동안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흘러들어 왔지만, 그것은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다. 딸의 마지막 메시지가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행복했던 그날.” 그 말이 어떤 날을 의미하는지 혜원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케이라는 낯선 이름, OpenMind라는 단체, 그리고 딸의 죽음과의 연결고리는 혜원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결심했다. 이 만남은 딸이 남긴 마지막 흔적을 풀어내는 첫 단서가 될 것이다. 혜원은 딸의 메시지와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딸의 마음과 다시 연결되기 위해 이 기회를 붙잡아야만 했다.

그것은 단순히 딸의 죽음에 대한 답을 얻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딸이 남긴 마지막 소리를 듣고, 그녀와 다시 이어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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