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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보 Jan 19. 2018

우리 아이들에겐 여성 롤모델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여성리더 양성 정책'에 대하여


 한 기사에서 초등학교 교사의 여초 문제로 ‘여교사가 많은 교실에서 남학생들은 남성성의 롤모델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 덩치 큰 초 6 남학생들과 교실에서 매일매일 씨름을 하는 입장에서, 남학생들에게 좋은 남성성의 롤모델은 필요하다는 것에 동감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의 롤모델의 범주는 아이들의 꿈의 범주만큼이나 다양한 것이다. 책이나 TV, 최근에는 인터넷 등 많은 매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선망할 수 있는 멋진 롤모델을 만난다 (이때 걸러지지 않은 잘못된 롤모델로 인한 문제 또한 물론 심각하다.). 남학생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은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사회의 어딜 보아도 있다. 그들은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연령, 다양한 가족 구성, 다양한 경력 등을 가지고 있어 우리 친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곤 한다. 내가 느끼는 문제는 롤모델의 부재는 오히려 여학생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첫 주자가 되는 것이 가장 멋있는 길이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분야에 롤모델의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꿈의 크기를 결정짓는 요소이기도하다. 롤모델이 부족한 현실에서, 초등학교 중학년 때까지만 해도 남학생들만큼이나 다채로웠던 여학생들의 꿈은 나이가 들며 여러 의미에서 ‘좁아지거나 작아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꿈을 잘 지켜나가더라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길에 같은 성별의 인물이 롤모델이나 멘토로서 자리하지 않는다면, 그 길을 가는 것에는 아무래도 더 벽이 느껴질 수밖에 없고, 사실 그것보다도 무서운 것은 많은 여학생들에게 그러한 길은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기도 한다는 점이다. 누구보다도 반짝반짝한 재능과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여학생들조차 꿈의 범주를 스스로 좁혀놓고 심지어 외모 등과 연관 지어 미리 좌절하며 포기하려는 모습(심지어 외모가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생각하면서도!)을 볼 때면 교사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게 된다.
  

 나 또한 ‘교육자나 교육 이론가로서’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삶에서 본보기로 삼을 멘토나 롤모델을 열심히 찾아본 적이 있었다. 사실 이러한 본보기로 삼을만한 위인들은 참 많다. 대학생 때 ‘듀이같은 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었던 것처럼 듀이부터 시작해, 이론적으로 귀감이 되는 오우크쇼트, 더 공부해보고 싶은 허스트나 브루너, 대학원 공부할 때 가장 크게 다가온 이홍우 교수님, 교육정의론을 쓰신 이돈희 교수님, 우리 지도교수님, 최근에는 촌철살인의 필력을 보여주시는 권재원 선생님 등등. 한국에도 많고 아직 살아계신 분들도 있으며, 실제로 이 분들의 삶을 살피고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이 분들은 다 나와 다른 성별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멘토를 여성으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이 분들이 성별을 상관하지 않고 진정한 귀감이 되어주실 분들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멘토라도 나와 성이 같고 다르고는 큰 차이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삶에서 겪게 되는 경험의 레퍼토리가 성별에 따라서 너무나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30대에 접어들어 임신, 출산, 육아 등 다양한 이유로 경력단절이 시작된 나의 세대의 친구들도, 학생 때는 정말 재능이 많고 뛰어난 알파 걸들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커리어보다는 가정이나 아이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친구들을 보면서, 사실 초등학교의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돌봄에 전념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선택이지만, 이 과정을 겪고 다시 한 번 사회에서 도약하는 롤모델들이 여러 분야에 다양한 사례들을 가지고 있어야, 누군가는 이 경력단절의 늪을 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용기 내어 도전하지 않겠는가?
  
 작년 12월 21일 정부가 2022년까지 고위공무원 중 여성 비율을 10%로 늘리고 공공기관 임원의 여성비율도 20%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치를 발표했다.  여성 고위직 비율을 늘린다는 얘기는 많이 나왔지만 정부가 기한을 정해 구체적인 목표치를 발표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211503001&code=940100#csidx9c52b005343c86daa07f38ce41028e0 )

 이 정책에 대해 나는 작은 박수를 보낸다. 사실 나는 인위적인 성별을 맞추기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위적인 제도 장치나 방법적 논쟁이 어떠한 것의 본질을 전도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선생님으로서 우리 여학생들에게 더 다양한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할수록 분명해진다.


  사실 공공기관에 여성 리더가 10%, 20%도 안 되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무 하지 않은가? 분명 현재로서는 인위적인 숫자 맞추기일지 모르나, 자격 있는 이들이 그 숫자를 채우는 한 이러한 제도는 곧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정계에 주목받는 여성 리더들이 등장하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실력 있고 당당한 여성 리더들을 보면 우리 여학생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멋진 삶을 살기를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정계나 연예계와 같은 분야뿐 아니라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여성 리더들, 멋진 여성 롤모델들이 사회 전반에, 도처에 있기를 바란다.

 10%만 달성해도 우리 여학생들의 꿈의 크기는 지금보다 100% 더 커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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