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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너에게

by 유바바

바람이 볼을 차갑게 스치고 머리 위를 햇살이 따갑게 한번 어루만져주면 ‘아! 가을이 왔나보다’ 하고 느끼는 게 아!니!다! 교사인 나에게 가을은 여름 한철 수능 응시원서를 쓰고 수시모집 지원을 위해 2주 안에 6개의 대학과 학과를 정하느라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느닷없이 오는 계절이었다. 교직 20여 년을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중학교 생활을 사춘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내고 아직은 몸에 딱 붙지 않은 어색한 교복을 입은, 가끔은 솜털이 보이기도 하는 귀여운 고1. 그들 앞에 노정된 고등학교 3년간의 입시전쟁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측은했다. 고2가 되면 조금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은 대학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직 친구들과 노는 게 좋은 아이들은 건들대며 세상의 모든 유행을 따라가기 바빴다. 지금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이상하게도 아이들의 눈빛이 조금은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고2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그들이 가져야 할 생생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사라지는 듯해서 슬펐다. 고2 겨울방학을 앞에 두면 너나없이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까지 따라가지 못했던 공부를 한방에 만회라도 하듯이 의지와 결심이 단단했다. 아이들 눈빛도 이때만큼은 12척의 배를 가지고 해전을 치러야 하는 이순신의 마음이지 않을까했다. 나도 겨울방학 내내 ‘사회의 건전한 시민을 육성’해야 하는 사회과 교육의 목표를 잊은 채 입시용 사탐 특강에 매달렸다. 수능 출제경향을 함께 파악하고 함께 대비하고 함께 문제를 풀었다. 그 혹독한 시기를 지나고 아이들은 고3에 돌입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담임은 이렇게 일갈한다. “성적은 더 오르지 않는다. 수능대박은 몇몇에게 정말 운 좋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고3 모두가 지금부터 열심히 하기 때문에 너희가 애쓴다 한들 한계가 있다. 재수생, N수생들도 너희들의 경쟁상대니까.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하자!” 웬걸? 유지할 성적이 있기는 해? 이미 받은 게 끝이라고? 나 아직 이 등급밖에 안되는데? 헐, 진짜일까? 에이 설마... 우리 담임이 괜히 하는 말일거야. 아니겠지?

어색했던 교복이 딱 붙다 못해 터져나갈 듯해서 더 이상 교복을 입지 못하는 상태가 될 때까지 3년을 허투루 보내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고 있고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풀어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신 등급을 받기 위해, 수능 최저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진로를, 전공을 찾기 위해 아이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복도 창가에서 부모님과 다퉜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머슴아도, 대학에 ‘자기를 추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아이도. 학교 곳곳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아이들이 너무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석식은 학교 밖을 나가서 뜨뜻하고 든든한 돼지국밥 한 그릇 하고 들어올 거라고, 빼꼼한 눈을 뜨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이 오히려 안타까웠는지 같이 가자고 얘기해주는 아이들. ‘애쓰다’...‘몸과 마음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이 시기 자신의 모든 애를 써내기를 강요받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대학의 서열 꼭대기에 설 수 없으며, 사회생활에 유리한 ‘학벌’을 줄 수 없다는 리바이어던의 존재를 쿨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애를 썼다.

나는 고등학교 3년의 긴 여행의 끝에 선 그들에게 조금 대충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미 너희들은 너무 많은 애를 썼음을 잘 안다고. 지금 여기까지도 너무 잘 와주었다고. 그러니 오늘 하루는 햇살과 바람 사이로 친구들과 함께 깔깔대는 여유를, 늘 너희들이 그랬듯이 더 이상 남을 나의 잣대로 혐오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에 애쓰자고. 아 참 중요한 걸 까먹었다.

수능 시험을 앞둔 나의 아들! 너의 대충삶을 응원해! 파이팅! (응원을 너무 대충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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