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바바 Sep 24. 2024

세상의 모든 알바(2)

내려오는 건 힘들었다. 한층 내려와서 현관문에 붙이고 또 한층 내려가서 현관문에 붙이고 두어 세층을 지나서부터는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럴 줄 몰랐다. 간신히 아파트 한동이 다 끝나갈 때 였다. 현관문 앞에 다가서자 갑자기 개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닫힌 현관문이라서 개가 튀어나올 일은 추호도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개가 물듯이 짖어댔다.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진 나는 혼미한 정신이 더 혼미해졌다. "으헉" 바닥에 나동그라진 스티커 뭉치를 다시 들고 옆 다른 집에 스티커를 붙였다. 계단 손잡이를 잡고 내려오면서 한숨이 내쉬어졌다. '아후 깜짝이야, 개도 있구나.' 조용히 몰래 붙이고 내려오다가 한번씩 개키우는 집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머리는 어지럽고 가슴은 뛰고 다리는 힘이 풀렸다. '야, 이거 쉬운 일이 아니구나.'


그래도 시작한 일이니 스티커 한 뭉치는 다 끝내야 했다. 옆 동으로 또 올라가서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붙이고 놀라고 풀리고 어지러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아파트 한 단지를 끝내는 데에 대략 두어 세시간이 걸렸다. 전단지 스티커는 열심히 한 내 자신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뭉치였다. 시간 대비 주는 돈이 너무 작은 것이었다. 사장님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노동은 착취되는 것이었다. 


사장님에게 몇 장 남은 스티커만 드리고 다했노라고 말했다. 붙였는지 버렸는지는 금방 뽀롱이 날터이니 굳이 확인하지 않고 사장아저씨는 돈을 꺼내 주었다. 


생애 첫 열쇠스터커 붙이는 알바를 하고 5,000원을 받은 나는, 그것보다 더한 시간을 쓰고 멀미를 느끼며, 시간 대비 대가가 너무 작은 알바비 생각에 어지러운 머리속과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집으로 귀가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스티커나 전단지 알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느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어린 아이들은 스티커 붙이는 걸 재미있어 하고 좋아한다. 아이들을 키우며 교육용 스티커를 사다줄 때마다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무 살의 내 열쇠스티커 알바가 생각났다. 이렇게 떼고 붙이는 스티커를 보면 그 날이 생각나 신물이 올라 오는 듯 했다. 스티커 떼서 붙이는 게 뭔 일이라고 하며 가볍게 생각했던 내가 생각났다. 그리고 뒤이어 어지러움과 멀미가 다시 올라오는 듯했다. 그래도 적은 노동에 많은 돈을 받는 알바가 내 인생의 시작점이 아니라서 돈 귀한 줄 알게 된 게 득이라면 득일까? 그래서 나는 언제나 작은 돈에도 감사하다.


청년의 노동은 순수하다. 세상을 아직 살아보지 않은 그들이기에 계산은 서툴다.

세상의 모든 사장님들이여 젊은이의 노동을 귀히 여기어 착취하지 마시길.


(사장님에게 욕들으며 알바하고 있다는 둘째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알바(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