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부터 PTSD, ADHD, 조울증』에필로그
이 책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저의 인생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제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네 날이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TOP1 엄마가 형과 나를 지키려고 다짐한 날
TOP2 현재의 아빠(계부)가 형과 나를 아들로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한 날
TOP3 아빠가 그 다짐을 외할머니 앞에서 이야기한 날
TOP4.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 날
엄마는 저와 형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이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의 근간을 이루죠. 만약에 그때 엄마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갔다면 저의 인생은 정말 많이 어두워졌을 것입니다. 지금도 쓰면서 울컥합니다. 그 당시의 엄마는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을까요. 그러나 결국 저랑 형을 지켜내셨습니다. 이 책은 엄마에게 바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의 아팠던 이야기가 쓰였지만 그 근간에는 그 당시 그 사건을 겪고도 충분히 아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죠. 물론 엄마의 실수로 중학생 때의 트라우마 침습은 제가 가지고 있는 병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의 이런 배경 때문에 엄마를 최대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 결과 엄마를 엄마로 써가 아니고 한 명의 여자로서의 엄마의 삶을 볼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엄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앞으로 엄마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이 두 날은 저와 형과 엄마 이 위태로운 가족을 받아들였던 아빠의 감사함과 존경심 덕분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빠는 이런 판단을 어떻게 하실 수 있으셨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나는 그게 가능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아빠는 외할머니 앞에서 공식화함으로써 저의 가족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빠가 저에게 오지 않으셨다면 마찬가지로 저는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엄마에 대한 미안함입니다. 중학생 시절의 저는 엄마를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 당시에 한 인간이었던 엄마에게 많은 시련이 왔었고 그걸 술로 달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달래주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던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엄마가 인간관계에 대해서 힘들었다는 맥락을 알았다면 트라우마로 발전하지 않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의 첫 글과 마지막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매우 정제되어 있어요. 트라우마를 처음 꺼낸 날의 글은 많이 정제되어 있어요. 그런데 1부 2부 3부를 지나면서 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거 같아요. 좀 더 제 3자의 시각으로 제 자신을 보게 되었죠. 그래서 글이 지남에 따라서 병을 바라보는 시선도 편해지고 글도 편하게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몸으로부터 프레임을 벗어나고 보니 느낀 점은 역설적이지만, 삶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은 짧고 아름다우니 제2의 삶을 다시 살자 “.
이 문장은 그때 떠올랐던 제 마음의 결론이자,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한 문장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제게 유일하게 솔직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응어리를 처음으로 올렸습니다. 그런데 처음 달린 댓글 하나, 좋아요 하나가 제겐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확신 ― 그건 다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 책은 고통에서 시작했지만, 사랑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고통은 제 삶의 몫이었지만, 그 무게를 견디게 한 힘은 결국 가족이었습니다.
상처 속에서도 다시 글을 쓰고 살아낼 수 있었던 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순간 덕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렇게 고백합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이 책의 문체와 리듬은 일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체의 불안정은 저의 병이 만든 결함이 아니라, 저의 진심이 만든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제 마음의 흐름이자 회복의 과정입니다.
글의 흔들림은 곧 제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