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활동비 무상화의 이면, 바우처가 놓친 것들.
쌀쌀해진 날씨만큼이나 학부모들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2023년 1월 교육부가 '유보통합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약속했던 '출생부터 국민안심 책임교육'과 '기회의 사다리'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3~5세 단계적 무상교육·보육 실현의 일환으로, 2024년 만 5세를 시작으로 2026년 만 4~5세, 2027년 만 3~5세까지 유아교육비·보육료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25년 7월부터는 만 5세 유아 약 27만 8천 명을 대상으로 특별활동비와 현장학습비 등 기타경비까지 재정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사립유치원에는 월 11만 원, 어린이집에는 월 7만 원을 추가 지원하여 특별활동비를 사실상 무상화한 것입니다. 언뜻 보면 획기적인 정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책이 시행된 지 상당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실효성을 냉정하게 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의 지원 방식이 진정한 '무상교육'이 아닌 '비용 보전(바우처)'에 가깝다는 데 있습니다. 정부는 "특별활동비를 사실상 무상화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2024년 4월 기준, 사립유치원의 월평균 학부모 부담금은 정부 지원금을 제외하고도 평균 13만 5천 원에 달했고, 많게는 20만 원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영어, 발레, 미술, 과학 등 각종 특별활동비까지 더하면 실제 납입액은 40~50만 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특별활동은 선택이라지만 우리 아이만 안 시킬 수도 없었다"는 한 학부모의 고백처럼, 특별활동은 사실상 필수가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2025년 7월부터 만 5세에 대한 특별활동비 지원이 시작되었지만, 학부모들의 부담이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정부 지원금이 늘어나면 기관들이 새로운 명목의 비용을 만들어내거나 기존 특별활동의 단가를 올릴 가능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활동비 무상화'는 학부모의 부담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립 기관의 가격 인상분을 메우는 용도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지원이 '특별활동비'라는 이름으로 지급되면서, 특별활동을 제도적으로 공인하고 고착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바우처 정책의 역설'입니다. 자유시장 이론에 따르면, 수요자(학부모)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면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가 보장되고 공급자(기관) 간의 경쟁을 통해 서비스 질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유아교육 시장은 일반적인 시장과 다릅니다. 국공립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립은 가격을 담합하기 쉽기 때문에 공급이 극도로 비탄력적이며, 서비스의 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정보 비대칭성'이 심각합니다.
이런 '시장 실패(Market Failure)' 환경에서 정부가 바우처(지원금)를 늘리면, 그 돈은 수요자의 효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공급자의 이윤으로 전가됩니다.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특별활동비를 낼 수밖에 없고, 사립 기관들은 정부 지원금이 오를 때마다 그에 맞춰 '기타경비' 항목을 교묘하게 조정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특별활동비 무상화'라는 이름으로 지원금을 주면서, 본래 유아교육의 정규 과정에 포함되어야 할 영어, 미술, 음악, 체육 등을 '특별활동'이라는 별도 카테고리로 제도화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공교육의 책임을 축소하고, 사교육 시장을 유아교육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원금의 공급자 흡수'와 '사교육의 제도화' 현상입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무상교육' 담론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는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극명해집니다. 유아교육·보육 정책은 크게 두 가지 모델로 나뉩니다. 하나는 한국처럼 현금성 지원(바우처)을 통해 부모가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돕는 '시장 의존형 모델'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가가 직접 혹은 강력한 규제하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 투자형 모델'입니다.
대표적인 '사회 투자형' 국가는 프랑스입니다. 프랑스의 '에콜 마테르넬(École Maternelle)'은 만 3세부터 6세까지의 모든 아동이 다니는 공립 유아학교입니다. 이는 단순한 보육시설이 아닌, 교육부 소관의 '학교'이며, 원칙적으로 100% 무상으로 운영됩니다. 교사 역시 초등학교 교사와 동일한 자격 및 지위를 갖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부모에게 돈을 쥐여주며 시장에서 좋은 유치원을 찾아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아동이 거주지 근처에서 양질의 공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공 인프라' 자체를 제공합니다. 물론 완전히 무상은 아닙니다. 간식과 식사비는 학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5단계로 차등 부과되지만, 이는 담당자와 학부모 외에는 일절 공개되지 않으며, 기본적인 교육 자체는 무상입니다.
프랑스의 이러한 시스템은 1791년 헌법에서 '모든 시민에게 공통적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무상의 공교육을 조직한다'고 명시한 이래,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발전해 온 결과입니다. 그들은 유아교육을 '시장의 영역'이 아닌 '공교육의 의무'로 명확히 정의했습니다.
북유럽의 스웨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웨덴은 100% 무상은 아니지만, '소득 연동형 비용 상한제'를 강력하게 시행합니다. 부모의 소득에 비례해 보육료를 내지만, 그 상한선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3세 이상 자녀에게는 주당 15~25시간의 공교육이 무상 보장되며, 초과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월 소득의 1~3% 수준으로 부담합니다. 자녀 1명인 경우 최대 한도액은 월 1,645크로나(약 20만 원), 두 번째 자녀는 1,097크로나(약 13만 원), 세 번째 자녀는 548크로나(약 7만 원)입니다. 또한 2자녀 이상 가정에는 '다자녀 가족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여 양육 부담을 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비용 상한선 외에 '기타경비'나 '특별활동비'라는 명목의 추가 징수를 원천적으로 금지한다는 점입니다. 국가는 보조금을 주며 생색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실제 지불하는 '최종 가격'을 통제합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정책은 부모에게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불안'을, 기관에게는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가격 전가'의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그 결과가 2025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지원금은 늘었지만 부담도 늘어난' 모순입니다.
정부가 왜 유아교육에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이론적 근거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James Heckman) 교수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 이론입니다. 그는 생애 초기에 이뤄지는 양질의 교육 투자가 개인의 미래 소득과 사회성 발달은 물론, 범죄율 감소, 보건 비용 절감 등 막대한 사회적 이익을 가져온다고 역설했습니다.
헤크먼은 여러 장기 추적 연구를 통해 이를 증명했습니다. 특히 그의 연구팀이 분석한 Carolina Abecedarian Project(ABC)와 Carolina Approach to Responsive Education(CARE) 프로그램은 출생부터 5세까지의 포괄적 조기 교육이 연 13%의 투자 수익률을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주식시장이나 저축 계좌의 수익률에 필적하는 수준입니다.
헤크먼이 강조한 것은 단순한 '현금 살포'가 아닌, '양질의(High-Quality)'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그는 "조기 교육은 생애에서 가장 가단성(malleability)이 높은 시기에 이뤄지며, 이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몇 배의 사회적 비용이 든다"고 경고했습니다. 투자의 수익률은 생애 초기일수록 높으며, 이후로 갈수록 급격히 감소합니다.
2023년 유보통합 추진방안과 2025년 정책 역시 '출생부터 국민안심 책임교육'을 내세우며 이러한 인적 자본 투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투자'의 방식입니다. 헤크먼이 강조한 것은 단순한 현금 지급이 아닌, 체계적이고 질 높은 조기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직접 투자였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방식, 즉 '특별활동비 무상화'는 이 '양질'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이 돈은 양질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립 기관의 이윤 보전과 통제 불가능한 '영어 특별활동' 비용으로 증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부는 특별활동비를 '지원'하면서, 본래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을 특별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외주화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에콜 마테르넬에서 영어, 미술, 음악이 당연히 정규 교육의 일부인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것들이 '특별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는 항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사의 처우 개선, 교육 커리큘럼의 질적 향상, 안전한 시설 확충 등 진정한 의미의 '교육 인프라' 투자 대신, 학부모에게 쿠폰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투자의 실패'이며, 인적 자본 이론이 말한 '최고의 수익률'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지금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라는 명분으로 '사립 시장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2년간의 경험, 그리고 2025년 7월부터 시행된 '특별활동비 무상화' 정책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바우처 지급이 '학부모 부담 경감'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단계적 무상교육'이라는 표어 아래, 우리는 실질적인 공공성 강화라는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가격 통제'가 시급합니다. 스웨덴 모델처럼, 정부 지원금을 받는 모든 기관은 '기타경비 총액 상한제' 혹은 '표준 유아교육·보육 비용 제도'를 도입해 학부모가 내는 '최종 가격'을 강력히 규제해야 합니다. 특히 '특별활동비 무상화'라는 이름으로 지원금을 주면서도, 기관들이 새로운 명목의 비용을 징수하거나 특별활동의 단가를 임의로 인상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둘째, 비용 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사립 기관들이 정부 지원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명확히 공개하고, 학부모들이 납부하는 모든 비용의 내역을 의무적으로 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하고 합리적 선택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공급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프랑스 모델처럼, 유아교육을 '시장의 영역'이 아닌 '공교육의 영역'으로 완전히 편입시켜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국공립 시설의 비율을 40~50% 수준으로 늘리는 것을 넘어섭니다. 유보통합의 본래 취지대로,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영유아학교'라는 단일한 공교육 체계 안에서 운영되고, 교사들이 공무원(혹은 그에 준하는) 신분으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며, 학부모는 최소한의 실비(급식비 등) 외에는 비용을 내지 않는 구조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교사의 전문성과 처우를 대폭 개선해야 합니다. 현재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보육교사 간의 자격 요건, 임금, 근무 조건의 격차는 심각합니다. 프랑스의 에콜 마테르넬 교사들이 초등학교 교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우리도 유아교육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 존중하고 그에 합당한 처우를 보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육 내용의 질을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현재처럼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특별활동'을 개설하고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된 양질의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이를 모든 기관에서 무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영어, 미술, 음악, 체육 등은 특별활동이 아닌 정규 교육 과정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합니다.
'특별활동비 무상화'는 학부모에게 반가운 소식일 수는 있으나, '기회의 사다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출발선 평등'은 모든 아동이 가정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국가가 책임지는 양질의 공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특별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영어, 미술, 음악을 별도 과금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된 '진짜 무상교육'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헤크먼이 말한 '생애 최고의 투자 수익률'을 가진 시기를 우리는 시장의 논리에 맡겨둘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책임지는 공교육으로 전환할 것인가. 프랑스와 스웨덴이 증명했듯, 후자의 길이야말로 진정한 무상교육이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2025년 11월, 쌀쌀한 날씨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정부는 정말로 '출생부터 국민안심'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바우처가 아닌, 인프라를. 특별활동비 지원이 아닌, 정규 교육 과정의 내실화를. 용돈이 아닌, 시스템을. 생색내기가 아닌, 책임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감사합니다.
필자 소개
에디. 교육 정책과 사회 불평등에 관심을 가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