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정말 '수포자'를 구했는가?

맞춤형 교육의 이상과 현실

by 에디

안녕하세요, 에디입니다.


오늘은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025년 3월, 대한민국 교실에 AI 디지털교과서(AIDT)가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세계 최초 AI 공교육 전면 도입'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이 정책은, 교육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1대1 맞춤형 교육'의 실현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현장의 목소리는 기대와는 사뭇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과연 AI는 우리 교육의 구원투수가 되었는가, 아니면 또 하나의 미완성 실험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사실 '맞춤형 교육'이라는 개념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1960년대 교육심리학자 벤자민 블룸(Benjamin Bloom)은 '완전학습(Mastery Learning)' 이론을 통해 모든 학생이 충분한 시간과 적절한 지도만 제공된다면 학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블룸의 핵심 통찰은 간단했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능력 차이가 아니라 '학습에 필요한 시간'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984년 발표한 연구에서 1대1 개인교습을 받은 학생들이 일반 학급 학생들보다 2 표준편차(2 Sigma) 더 높은 성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개별화 교육의 중요성을 입증했습니다.


AIDT는 바로 이 '블룸의 2 시그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시도였습니다. AI가 마치 개인 교사처럼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와 수준을 파악해 맞춤형 학습을 제공한다면, 공교육에서도 개인교습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이론과 현실 사이의 깊은 골입니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지식, 씹어 삼키는 건 아이들의 몫


AIDT가 내건 가장 큰 약속은 '영포자·수포자 없는 교실'의 실현이었습니다. AI가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취약점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문제를 추천해주겠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실제로 데이터 기반 학습 진단 덕분에 학생별 약점을 파악하는 속도는 확실히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치명적인 맹점이 있습니다. '진단'이 곧 '해결'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은 생활 그 자체"라고 강조하며, 학생의 경험과 흥미를 무시한 주입식 교육을 '죽은 교육'이라 비판했습니다. 듀이는 진보주의 교육철학을 통해 학습자의 능동성과 자발성이 교육의 핵심임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AIDT의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합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문제를 추천해도, 학습 동기가 부재한 하위권 학생들은 여전히 화면만 멍하니 응시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러한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사 간 디지털 활용 역량 격차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교사의 반과 그렇지 못한 교사의 반 사이에서 수업의 질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육 격차 해소'를 외쳤던 정책이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학생은 AI의 추천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단순히 문제를 풀고 넘어가는 '기계적 반복'에 그칩니다. 개별화 교육(Differentiated Instruction) 이론의 권위자인 캐롤 앤 톰린슨(Carol Ann Tomlinson)은 진정한 개별화 수업이 단순히 과제를 다르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준비도(readiness), 흥미(interest), 학습 프로파일(learning profile)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AIDT는 주로 '학습 데이터'에만 의존할 뿐, 학생의 정서적 요구나 학습 동기, 심리적 상태 같은 비인지적 요인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강조한 '맞춤형 학습'은 결국 학습자의 능동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고, 그 전제가 충족되지 않을 때 AIDT는 사교육 문제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디지털 문제 풀이 도구로 전락해버립니다. 듀이가 경고했던 '경험 없는 학습'의 한계가 디지털 시대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단은 1초, 처방은 무한대? '책임'이라는 무게의 딜레마


AIDT와 함께 도입된 또 하나의 정책이 있습니다. 바로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책임교육학년제'입니다. 학습 결손이 발생하는 골든타임인 이 시기에 AIDT로 정밀 진단을 실시하고, 즉각적인 보정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정책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초3은 읽기·쓰기·셈하기를 기반으로 교과학습이 본격화되는 단계이고, 중1은 초등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이 시작되는 분기점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학력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기 쉽습니다.


이는 블룸의 완전학습 이론이 강조하는 바와도 일치합니다. 블룸은 학생들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현재 수준의 학습 내용을 완전히 습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95%의 학생이 90% 이상의 학습 성취를 완료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위해서는 개별 학생에게 필요한 시간과 지도를 제공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책임교육학년제는 바로 이러한 완전학습의 원리를 현실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장의 현실입니다. AIDT의 진단 결과는 쏟아지는데, 이를 보정해 줄 '인력'과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규수업과 방과 후 활동에 AI 맞춤형 학습을 연계하고, 방학 중 '학습도약 계절학기'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은 있지만, 막상 이를 실행할 담당 교사는 기존 업무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블룸이 완전학습을 제안했을 때부터 지적되었던 가장 큰 난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시간'의 문제입니다.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 학습 속도가 빠른 학생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가 매 수업마다 30명이 넘는 학생 개개인의 출발점 행동(entry behavior)과 학습 준비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결국 시스템은 아이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알려주지만, 적절한 인적 자원의 지원이 없어 '왜' 모르는지는 파악하지 못합니다. 가정환경, 정서행동 문제, 학습 동기 저하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힌 학력 저하를 기계적 문제 풀이 반복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Lev Vygotsky)가 제시한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 개념을 떠올려봅시다. 비고츠키는 학생이 혼자 할 수 있는 수준과 도움을 받아 할 수 있는 수준 사이의 영역에서 진정한 학습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는 교사나 또래와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핵심입니다. AI는 학습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학생이 어려움을 겪을 때 격려하고, 질문에 맥락적으로 응답하며,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인간적 개입'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2025년부터는 중점 지원 대상을 기초학력 미달(약 5%)에서 중·하위 수준 학생(약 3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지원 범위는 넓어지는데 정작 이를 뒷받침할 교사 인력 확충이나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같은 실질적 조치는 따라오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책임교육학년제'는 구호에 그칠 위험이 큽니다.


AI는 '도구'일 뿐, 교육의 본질은 '눈맞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AI 교육의 본질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화여대 정제영 교수가 제안한 'HTHT(High Touch-High Tech) 교육' 개념이 여기서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HTHT는 교사가 주도하는 창의적 교육인 '하이터치 교육'과 에듀테크 기술을 활용한 '하이테크 교육'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기술은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일 뿐, 교사의 따뜻한 손길과 인간적 교감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교사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티칭(Teaching)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면, 교사는 코칭(Coaching)과 정서적 지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되어야 합니다.

행정업무 경감은 수년째 외쳐온 과제지만, AIDT 도입과 함께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AIDT는 그저 화면 속 숫자와 그래프에 불과합니다. 듀이가 강조했던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이 살아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가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학습 촉진자(facilitator)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이터치(High Touch)를 강화해야 합니다. AIDT 데이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보충 지도 인력을 확충하고 소규모 튜터링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사람'에 의한 맞춤형 지원이 병행되지 않으면, 기술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칩니다. 실제로 학습 동기가 낮거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는 AI보다 따뜻한 격려 한 마디가 더 큰 힘이 됩니다. 블룸이 말한 '완전학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AI의 진단 기능과 함께 교사의 섬세한 관찰, 동료 학생과의 협력 학습, 학부모와의 긴밀한 소통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셋째, 디지털 격차 해소에 실질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교사 간, 학생 간 디지털 활용 역량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연수가 아닌 실무 중심의 체계적 연수가 필요합니다.

또한 가정 내 디지털 기기 접근성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디지털 교육의 혜택이 특정 계층에만 집중되는 순간, AIDT는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개별화 교육 지침서가 강조하듯, 진정한 개별화는 기술적 도구의 차별화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동일한 학습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로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넷째, AI 활용에 대한 교사 전문성 신장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기기 조작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AI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어떻게 교육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수가 필요합니다. 교사가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학생의 학습 과정을 관찰하고, 적절한 시점에 개입하며, 학생 간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HTHT 교육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2025년은 AI 도입의 원년이었을 뿐, 성공을 논하기엔 이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교육이 되도록 끊임없이 점검하고 보완하는 일입니다. AI는 분명 강력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도구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블룸이 꿈꿨던 '모든 학생을 위한 완전학습', 듀이가 강조한 '경험과 상호작용이 살아있는 교육', 비고츠키가 제시한 '근접발달영역에서의 협력적 학습'—이 모든 교육학적 통찰은 한 가지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화면 속 알고리즘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사이의 '눈맞춤'이 살아있는 교실입니다.


에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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