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늘 찬밥을 먹었다. 집에서 서열이 가장 낮다는 이유로 찬밥을 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찬밥을 특별 제공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동생은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어린 시절 늘 거부했고 밥상 앞에서 늘 찬밥 타령을 했다. 식은 밥이 아니면 밥 먹기를 거부했고, 어머니는 동생이 먹을 찬밥을 매일같이 미리 만들어 두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끔 찬밥을 미리 만들어놓지 못했을 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을 베란다에 두고 식혀두기도 했고, 뜨거운 여름날에는 냉동실에 밥을 넣어두기도 했다. 동생의 그 특이한 취향을 고치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이전까지 뜨거운 것이 입안에 들어오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찬밥만 고집했다.
동생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사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동생과는 반대로 늘 더운밥을 고수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갓 지은 밥만 먹으려고 했었다. 가끔 식은 밥을 먹을 순간도 있었는데 극구 거부했다. 뜨거운 국에 밥을 말아먹을 때도 늘 따뜻한 밥을 찾았고, 한 여름에도 보온 도시락에 들어있는 밥만을 고집했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밥은 전자레인지 맛(?)이 난다는 이유로 싫어했다. 어머니는 대체 전자레인지 맛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질문을 하기도 했고, 그럴 때면 억지로 뜨겁게 만들어나서 발생하는 전자파 맛이라는 나만의 정의로 맛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밥도 갓 지은 밥으로 만든 것을 좋아했고, 식어버린 김밥은 상대적으로 싫어했다. 생각해보니 차가운 음식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상반된 취향을 갖고 있는 형제를 보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먹고 저런 아들을 낳았냐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장금이의 절대 미각을 능가하는 미각으로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평을 늘 아끼지 않으셨다. 음식의 간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설탕이나 꿀이 조금 많이 들어가면 많이 들어간 대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과감 없는 평을 하셨다. 그런가 하면 반찬 수가 적으면 적은 대로, 또 많으면 많은 대로 음식 가지 수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식사 자체를 거부하시거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음식에 대한 평가는 하루도 빠지는 날이 거의 없었다. 물론,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먹어줄 만하다”는 담백한 말씀으로 가볍게 말씀하셨다.
이쯤 되면 어머니는 미칠 것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는 당신이 만든 요리에 상당한 자부심을 지니신 분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모두 맛있다는 말과 더불어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무슨 음식을 만드시든 간에 음식 장사를 해도 되겠다는 자화자찬을 빠트리지 않으셨다. 김치 장사, 전 장사, 떡볶이 장사, 갈비찜 장사, 감자탕 장사 등 모든 음식에 강한 자신감이 있으셨다. 심지어 한 번씩 간이 잘못된 음식도 아랑곳하지 않고, 맛이 있다고 주장하셨던 분이다. 한 번은 계란말이를 너무 짜게 만들어서 “소태 같다”는 아버지의 평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간이 잘만 맞다고 응수하시자, 아버지는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자 어머니는 “못 먹을 줄 알고”라는 말과 함께 드셨고, 자존심 때문에 그걸 드시는 어머니를 생각해서인지 그 계란말이를 대신 버려주셨다. 아버지가 고마운지 물어보셨으나 어머니는 아까운 걸 왜 버렸냐고 말씀하셨지만 내심 기뻐하는 표정이셨다.
단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우리 집의 밥상은 요란했다. 동생은 찬밥을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밥을 입 안에 넣고 오랫동안 씹지 않는 습관도 있어 지적 대상이었고, 나의 경우는 김치를 잘 먹지 않는 것과 닭 껍질이나 돼지고기의 비계도 항상 떼어 버리고 먹는 것도 지적 사항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음식평가와 어머니의 음식 자부심은 늘 충돌했고 식탁은 조용할 틈이 없었다. 외부 손님이 온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 번은 이모가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하다가 무서워서 같이 밥을 못 먹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신 적도 있으셨다.
주말 연속극에서 그려지는 화기애애한 밥상은 우리 가족의 식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화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 뿐, 요란한 만큼 화기애애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맛이 없다고 하지만 밥을 두 그릇씩 드시는 아버지, 떡볶이에 청양 고추를 가득 넣는 실험적인 요리를 만들고도 매콤한 맛의 변주라고 자부하시는 어머니, 편식으로 지적할 것들이 많은 자식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식탁은 단 한 순간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그 어떤 밥상보다도 시끄럽지만 그만큼 대화가 끊기지 않는 밥상인 까닭에, 가장 화목한 가족의 식탁이라고 자부한다. 다만, 외부 손님이 올 때는 "싸우는 것 아님"이라는 표지판 같은 것 하나 정도는 식탁에 붙여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