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편식이 참 심한 편이었다. 물론, 지금도 가리는 것 없이 모두 잘 먹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은 못 먹는 음식도 많았고, 안 먹는 음식도 참 많았다. 버섯은 모양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채소 종류는 아무런 맛이 없다는 이유로, 미역국은 이름대로 미끈한 그 미역의 느낌이 싫다는 것이 핑계였다. 특히, 김치, 된장은 맛과 냄새가 좋지 않다는 거리를 두었다. 그때부터 부모님은 이런 나를 매우 이상하게 여기셨다. 나에게 김치, 된장을 먹이기 위해 친척들까지 동원하는 등 갖가지 노력을 다 하셨지만 결국 포기하셨고 지금까지도 그 두 가지 음식은 거의 먹지는 않고 있다. 그 때문인지 지금껏 부모님께 들었던 가장 많이 들었던 잔소리 중 하나가 “조선 천지 김치, 된장 안 먹는 너 밖에 없다. 한국 사람이면 당연히 김치, 된장 먹고 살아야지! 한국사람 맞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김치, 된장을 좋아하고 매일 같이 먹는 것인 왜 당연해야 하는 사실인지 반문을 제기했다. 부모님께서는 한국 음식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먹으니까, 안 먹는 사람 없으니까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또 거기서 수긍하지 않고, 한국 음식이면 한국 사람이 다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냐, 다른 사람들도 다 먹으면 먹는 것이 당연한지 또 꼬리 질문을 던졌고, 졸지에 그걸 물어보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말씀까지 하시기도 했다.
편식하는 식습관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당연성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조금의 생각도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사고가 확장되는 것을 방해하는데 일조하고 사회를 경직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 <반올림2>에 아래와 같은 대화가 나오는데, 우리 사회에 당연성이 녹아져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정민 : 너 “당연하지” 게임 알지?
옥림 : 무조건 당연하지 하는 거?
정민 : (끄덕인다) 우리 어른들하고 그 게임하는 거 같지 않니?
어른들이 뭐라고 하면 우린 무조건 당연하지 대답하는 거야.
옥림 : 무슨 소리야?
정민 : (본다) 넌 당연하지 해 봐!... 일단 좋은 학교 가야 된다
옥림 : ...당연하지!
정민 : 무조건 공부만 해라!
옥림 : 당연하지
정민 : 세상은 공부 잘했던 사람들의 것이다.
옥림 : 당연하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학교를 가야만 하는 것을 “당연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그것을 추구했을 때 결코 손해를 볼 일도 없겠지만, 사고가 경직되어 새로운 생각과 더 나은 사유를 하는 기반이 약해질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오른손을 “바른손”이라는 부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위 “요즘 세대”라는 하는 아이들에게는 “바른손”이라말 자체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바른손에 대한 당연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덕분에 사회가 더 건강한 방식으로 발전하는데 보탬이 되었다고 믿는다.
최근 “존댓말 판결문”이 대중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 동안은 판사의 판결문에 나와 있는 반말이 “당연한” 문체였고 그와 같은 어법을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았던 까닭에 눈길을 끌었다. 존댓말 판결문이 익숙하지 않기에 아직까지 부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판결문은 반말이어야 한다는 것은 관례였을 뿐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일상생활, 그리고 대중문화 속에는 “당연성”을 바탕으로 은연 중에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본다. 그 덕분에 사회 질서가 유지되고, 서로 통합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어쩌면 균열이 될 수도 있는 그 질서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다양한 사유를 바탕으로 사회의 질서가 더 나은 방향을 찾아 유지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고, 당연성에 던진 물음표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 싶다.